세상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 보면 꼭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라는 일들이 있기도 하다.
지나간 일중 곰곰 씹어보는 것 중에 하나가 서울에서 남원으로 이주했던 사건이다. 사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도시생활을 접고 산더미 같은 이삿짐을 싣고 남원으로 이사 간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나도 모르게 번아웃이 왔을 것이고 그리고 인생 이충기도 같이시작되면서 죽을 것 같아 직장도 버렸고 숨 막히는 도시생활도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천지가 녹음이며 무조건 나를 살려줄 것 같았던 지리산이있는 예향의 도시 남원으로 옮겨갔다.
남원으로 이사한 4월초는 남원 요천의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아름다운 봄날을 연출하고 있었다. 청년기처럼 보이는 요천의 튼실한 벚꽃나무는 대한민국 어디에 내놓아도 제일 일 것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사실 그때는 마음이 힘든 때였으므로 어디에서 무슨 꽃을 보아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코스별지리산 둘레길을 따로 갈 필요도 없을 만큼 온 동네길이 지리산 둘레길이었던 그곳에서 사계절이 도대체 뭐니 하면서 살았던 10년의 서울 생활은 진정한 위로를 받았고 그 위로에 힘입어 다시 돌아온도시에서아주잘 살고 있다. 지금 군말 없이 도시에서 잘 살고 있는 이유는 사실 도시생활과 많이 다른 시골살이가 좀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벌레천국이고 급격하게 줄어든 인구밀도를 즐겨야 하는데 우선 허전함에적응하기도 힘들었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에 나 혼자 서있을 때 밀려오는 외로움... 맞아... 난 도시형 인간이여... 현타가 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종이장처럼 얇아졌던 마음의 근육도 다시 생겨났고 적당량의 시골체험도 한 그즈음 도시가 그리워 다른 종류의 우울과 외로움이 쌍으로 나를 덮치기 전에 안전하게 도시로 재탈출했다. 내가 세상 가벼운 인간이었음을 인정하면서 ^----------^;;
어쩌다 운 좋게 벼룩시장 광고에서 발견한 작은 시골집을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집으로 만들었고 남원에 집이 있으니 가끔이라도 남원을 방문해야 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나는 남원을 뜸하게 방문했고 코로나를 기점으로 오랫동안 남원을 오지 않다가 몇 년 만에 남원을 왔다. 남원 하면 또 광한루이지 않는가. 광한루를 돌아보니 그 사이 광한루 주변이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처럼 보인다. 관광지 같은 분위기를 더 조성해서 사람들이 광한루와 그 주변에서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시를 다시 디자인한 모양이다. 외지 것의 시선으로 남원을 보면 지금은 21세기, 그리고 메타버스를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언제까지 춘향과 이도령에게 목메고만 있을랑가 싶어 좀 답답하기는 하다. 좀 많이 답답함. -......-그러나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남원 예촌이 남원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면 하는 마음은 지역주민 못지않게 크다. ^.^
내가 떠나 있던 동안 남원은 다시 내 마음을 잡으려고 무진 애를 쓴 것 같고(착각도 좀 오지기는 하다만 ㅋㅋ) 쾌청한 날씨와 여유로워 보이는 나들이객들의 행복함이 남원의 매력을 한껏 올려주었다. 변심한 여인이 상처 줘서 떠나보낸연인을 우연히 발견하고 몰래 훔쳐보는 느낌,10월 9일 오랜만에 방문한 남원에 대한 소감이다.
지금도 나는 지리산과 아담한 시골집으로부터 위로받고 있다. 그래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도 남원으로 옮겨왔던 일은 조금도 후회할 끈덕지가 없는 멋진 결정이었다. 다행이다 후회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