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11월 11일 토요일, 노란 잎이 흩날리는 금빛날씨
여기저기 캐리어와 가방들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다. 남편과 아들 각자의 짐을 다들 싸고 있지만 계획적이지 않는 내가 제일 부산스럽다.
고3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이 프랑스의 “르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 일찌감치 합격통보를 받은지라 미리 가서 기숙사며 입학처리를 위해 내일 식구 다 같이 프랑스로 가기로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먹성은 타고난 듯 가리는 거 없이 먹어대더니 사춘기를 보내는 동안 요리사가 되겠다는 선전포고를 했었다. 5년 전 그때는 그저 먹는 게 그렇게 좋은가 싶어 웃으며 넘겼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제대로 자신의 길을 찾았던 것 같다. 5년 전 브런치를 통해 작가가 되겠다고 시작하고부터 모든 순간들이 의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나이 47살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갔을 뿐인데 어느새 연간 1권씩 5권을 쓴 출간 작가가 되었고 나뿐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다.
남편은 원래도 읽고 쓰는 게 생활화된 사람이라 그런지 나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였다. 우리 부부의 막연한 바람이었던 파이어족이 되었고 더 이상 스트레스받으며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놓고 놀지만은 않는다. 여전히 읽고 쓰고 공부하며 오랜 바람이었던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5년 전 브런치에 처음 글 쓰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눈이 생겼고 떨어지는 붉은 낙엽도 글감이네하며 사진을 찍어두고 그날의 기분을 글로 적었었다. 오늘 유독 많이 흩날리는 금빛 은행잎을 보고 있자니 그때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잠시 라디오에 빠져 라디오작가를 꿈꿨던 그 꿈 한 조각이 날 작가로 이끈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프랑스로 가서 아들의 거취를 살펴 본다음 우리 부부는 제3 국가로 봉사를 떠난다. 마음속에 묻어둔 오랜 빚 같은 거였다. 봉사하고 기부한다는 건 말이다. 내가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동안 고통받는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이 보일 때면 뭔가 모를 가슴 아림이 있었다. 물론 여유가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제야 본격적으로 제대로 해보려 한다. 같은 뜻을 가진 남편과 꿈을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하는 아들덕에 가볍게 첫발을 내디뎌본다. 그 여정 또한 나의 또 다른 글로 기록되어 책으로 태어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책을 보고 공감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우리 세상은 좀 더 살만하지 않을까 내가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말이다. 마침 뜻깊은 여정에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의사를 보여주셔서 더 큰 가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같이 시작해서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고 있는 우리 슬초 동기들과 데뷔 15주년 자서전 출간을 맡았던 계기로 방탄소년단분들과 하이브 식구들이 함께 힘을 보태주셨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뿐인데 성덕(성공한 덕후)도 되었다.
이렇게 흘러가는 나의 하루는 정말이지 평안하고 무탈하고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하루하루이다. 생각난 김에 지금부터 5년 후의 일기도 한번 적어봐야겠다. 더욱 반들반들 윤기 나고 난더 사랑스럽게 나이를 먹었겠지? 상상만으로 벌써 미소가 지어진다.
아름답고 행복한 삶은
그런 삶을 꿈꾸고 믿는 자들에게
선물처럼 허락되는 것이다. -꽃은 누구에게나 핀다-
상단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