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평범했다. 아이를 학교 보내고 잠시 티비를 틀고 채널놀이를 하다가 영 재미난 게 없어 어느 채널에 그냥 머무른 채 두었다.
아이돌이라는데 나는 잘 모르겠고 엠씨들이 엄청 인기가 많다고 하는 소리에 그냥 고개를 돌려 화면을 응시했다. ‘누구지? 나도 모르는데 유명한 건가?’
호기심이 딱히 많은 사람이 아닌데 그날따라 궁금해졌다. ‘나도 잘 모르는 유명한 아이돌이 있다고?’ 무슨 오기였는지 왠지 뒤처지기 싫다는 마음인지 그 아이돌이 누군지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학창 시절 H.O.T 덕질을 해봤지만 난 사실 싫증도 많고 끈기도 없는지라 당시에 젤 인기 많으니 덩달아 합류한 정도였다. 노래 듣는 건 좋아해서 늘 음악어플의 순위곡은 익히고 듣곤 했다. 그것도 아이 낳고는 육아하고 복직해서 일까지 시작하고는 사치였다. 점점 멀어져 갔다. 늘 듣던 노래나 듣고 시간대 맞는 프로나 보고 심드렁해진 거였다. 그런 내 눈앞에 등장한 그 그룹은 바로 “ 방탄소년단” 막 봄날 활동을 하고 있던 시기라 방송출연이 조금 있었던 모양인데 그게 내 눈에 걸려든 것이다.
그때부터 아이 동요용으로 틀어주던 유튜브를 방탄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콘텐츠가 많은지 몇 날을 밤을 새울 정도로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스며 들었.. 아니 방며들었다. 다 한국인이란 점도 가사에 본인들의 철학이 담긴 것도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았다.
<팔도강산>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
우리가 와불따고 전하랑께
우린 멋져부러 허벌라게
아재들 안녕하십니꺼
내카모 고향이 대구 아입니꺼
그캐서 오늘은 사투리 랩으로 머시마 가시나 신경쓰지말고
한번 놀아봅시더
‘아이돌 노래가 이렇게 참신하다고? 내가 사는 곳도 가사에 나오잖아’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고 뇌가 새롭게 갈아끼워지는 느낌이었다.
가사를 중시해 듣는 나에겐 이것은 혁신! 충격! 의 노래였다.
그렇게 나는 눈이 충혈되고 루테인을 먹으며 낮밤 할 것 없이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몸은 피곤할지언정 활력과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덕질 테라피. 내 인생 가장 열정적인 시기를 보낼 준비가 되었다.
요즘의 아이돌은 공백기도 각종 콘텐츠와 실시간 소통을 마구 퍼부어주어서 정말 쉴새가 없을 지경이었다. 퇴사하고 만사에 의욕이 없고 우울증의 어느 경계를 넘나들던 나에게 방탄의 존재는 치료제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 너무 보기 좋아. 많이 웃고 뭔가에 몰입도 하고 엄청 신나 보여서 참 좋아 “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나는 남편과 아들, 친언니와 근처 사는 절친까지 다 덕질 메이트로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와 노래로 신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런 실력이 좋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 대상 한번 주게 하겠다고 메일계정을 수십 개 만들어 새벽까지 투표하고 한 표 차이에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기어코 대상을 타고 멤버들이 울 때 같이 콧물눈물 흘리며 감격해했다. 정말 내 평생 모든 걸 통틀어 내 온마음 다해 열정을 쏟아부은 시기였다. 그들의 가사에 위로받고 행복했다. 여전히 쭉 이어지고 있지만 초반의 시작할 때의 그 열정을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
제일 좋아하고 제일 위로받은 가사는
불타오르네
니 멋대로 살어 어차피 니꺼야, 애쓰지 좀 말어 져도 괜찮아
나에게 꼭 필요하고 간절했던 말이었다. 퇴사 후 혼자 뒤처지는 건 아닐까 이러고 사는 게 맞는 걸까 매일을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저 가사.
엄청 신나는 힘든 군무가 있는 노래인데 들을 때마다 뭉클하다. 져도 괜찮으니 애쓰지 마래. 내꺼니까 내 인생 멋대로 살아도 된다잖아.
덕질엔 나이가 의미 없다. 난 그들 덕에 삶이 즐거워졌고 가족들도 더 이상 내 눈치 보지 않고 나의 변화를 기꺼이 환영해 준다.
내 삶의 구원자. 건강하게 다들 잘 다녀오길 바래본다.
걱정이 싫어 인생은 길어 걍 가
I wanna live rignt now
브레이크 부러졌으니 밟아 엑셀
이러나 저러나 사람 신세
다 안다면 무슨 재미냐 고통은 내 훈장
그래서 so what.
-방탄소년단(BTS) So What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