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자식 욕심이 너무 많아.”
저녁 먹고 같이 동네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원이가 그런다.
“엄마가 자식욕심 많은 거 같아? 욕심 많은 거면 애를 한 여섯은 낳아서 검사, 의사, 연예인, 요리사 등등 줄줄이 시켰겠지. 근데 너 하나니 네가 이거 다 해야 해”
조금은 놀릴 심산으로 아이가 질문한 의도와 조금은 다르게 답해버렸다.
“ 그냥 여섯 낳지 그랬어. 그래서 검사, 의사, 연예인 다 시키고 나 하나는 백수 하면 될 텐데..”
그 당시는 그냥 어쩔 수 없어 그러고 웃고 넘겼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니 뭔가 아이의 마음에 속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릴 적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제대로 꿈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원이는 어릴 때부터 많은 경험을 해주고 싶었다.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더 해볼 수 있게 환경을 마련해 주고 학원도 보냈다. 5살 유치원 때 수영수업을 한 이후로 수영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길래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유아수영을 지도해 주는 수영학원을 매주 태워주며 5년을 보냈고, 레고에 관심 가지길래 블럭방을 연간으로 등록하고 매주 가서 마음껏 만들 수 있게 했다. 집에도 아예 책상 하나에 모든 레고 블록을 풀어놓고 책자대로가 아닌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했다. 잘했으면 하는 기대보다는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해보고 진짜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게 앞으로의 진로가 되든 취미가 되든 말이다. 엄마가 알아채지 못하고 아이의 관심분야를 흘려버리지 않을까 조바심도 났다.
초등학교도 그런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전원학교'를 알아보고 근처 시골로 이사를 해가며 입학을 시켰다. 자연 속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많은 다양한 경험을 했다. 1학년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장구, 북, 용고 등등 오케스트라와 국악까지 방과 후 수업으로 지원이 되는 학교라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워낙에 소수학급이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초3에 국악대회도 나가보고 오케스트라 공연도 해봤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만족한다.
나만 만족하는 것 같긴 하지만 아이는 그냥 해봤다 정도인 듯하다. 그래도 그 시절 학교에서 이런저런 체험한 것들을 종종 이야기하는 것 보면 영 싫진 않은 듯하다.
지금도 중학생이지만 공부보다 다른 게 더 흥미가 생긴다면 반가워하며 적극 협조를 하고 있다.
이런 나의 과도한 관심이 아이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고스란히 기대와 부담으로 느꼈을 테니 자식욕심 많다는 소리를 하지 않겠는가.
그저 본인도 모르는 새 놓쳐버릴 소중한 경험을 많이 해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아이는 아니었나 보다.
나는 다르게 키워야지, 나는 아이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해 주고 스스로 가진 것을 펼치고 찾게 해 줘야지 했는데 장르만 다르고 같은 거였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를 봐주고 칭찬해 줘도 잘 자랄 텐데 또 욕심이 앞섰다. 이미 건강한 신체와 밝은 성격만으로도 아주 잘 크고 있는데 아이의 스치는 듯한 한마디에 다시금 아이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엄마는 절대 의사, 판사 이런 거 하나도 안 중요해. 꿈이 직업이 아니고 행복을 주는 그 자체였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하루하루 행복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꿈을 가지고 살길 바래. 자식욕심은 넣어둘게"
감히 이렇게 외쳐본다. 나는 무소유다. 무소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