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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Oct 14. 2024

트로트 신동

열한 번째 인물

"아아아아~ 내 나이가 어때서~“


시장 한편에서 경쾌한 리듬과 함께, 구수하게 재끼는 목소리로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온다.     


둥글게 반짝이는 눈에 볼은 통통하다. 코는 작고 납작하고, 귀는 제법 크다. 입술은 작게 얇은데, 입을 벌리면 입이 제법 크다. 배가 꽤 볼록 나온 덩치에 제법 작고 작은 키. 한 6~7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다.     


이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시장의 명물이다.


이 아이가 5 살 때부터, 이 시장에서 시장 사람들이 요청하면 구수하고 큰 목소리로 어른들이 요청하는 트로트를 맛깔나게 불렀다. 그러다가 아예 이 시장 바닥의 명물로 자리 잡아, 이 동네 5일장이 열릴 때마다, 이 시장 한편에 자리 잡고, 지나가는 손님과 상인들의 수고에 작은 쉼과 즐거움을 주는 트로트 신동으로 사람들을 트로트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동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다양한 물건을 팔기 위해 할머니들, 어머니들, 그리고 아저씨들이 동네 한 곳에 자리 잡은 이 오래된 작은 시장을 찾는다.


이젠 제법 마트들과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장에서 구경을 하면서 물건을 흥정하며 조금이라도 깎아, 싸고 신선한 물건을 공급받으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오랫동안 이곳의 시장을 다닌 단골손님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는 시장사람들의 얼굴을 알아서, " 어머니", " 아저씨", 혹은 "사장님" 하며 그들을 반갑게 부르고, 필요한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꺼내놓는다.     


"더 줄게."라는 인심이 풍성한 상인들의 모습에, 오늘 밥상에 푸짐하게 올라가게 될 각종 야채들과 과일, 생선, 고기들이,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바쁜 주부들의 얼굴에 작은 미소를 짓게 한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따라,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시장에 놀러 다녔던 어린아이들이 이제 제법 어른이 되어 옛 추억을 떠올리거나, 신기해서도, 이 시장을 찾기도 한다. 자신들의 할머니뻘, 혹은 삼촌, 이모뻘 되는 상인들과 어색하지만 그래도 아직 서툰 솜씨로 흥정을 하며 물건을 사는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상인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자식을, 손주를, 혹은 조카를 보는 것처럼, 반갑다.     


이 트로트 신동이라 불리며, 시장에서 주목받는 트로트 부르는 아이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 5일장에 나타났었다.


할머니는 다른 도매 업체에서 떼다가 고구마와 감자를 팔았다. 제법 몇십 년을 이 동네에서 이 시장에서 고구마와 감자를 판지 꽤 된 베테랑 할머니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손주와 오는 할머니는 아니었다. 한 3년 전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손주를 데리고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던 할머니였다.     


동네 사람들이 갑자기 시장에 까지 나타난 손주에 대해 물으니, 할머니가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쏟아냈다.     


그녀의 아들은 다른 도시에서 잘 정착해서 살다가 가끔씩 명절에 할머니를 보러 내려오곤 했었다. 그렇게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서 홀어머니를 모실 형편이 되지 않는 아들은 그래도 제법 행복하게, 아내와 함께 작은 야채 가게를 하며 살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어느 날, 야채가게를 마치고, 트럭을 몰고 집으로 가던 부부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때 이 아이도 함께였다. 그래도 아이라도 살리려고, 자신들에게 돌진해 온 차를 피해 아들이 핸들을 꺾었고, 그의 아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아이를 감싸 안으며 최대한 아이가 다치지 않게 보호했다.      


결국, 아이는 살았지만, 부부는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


결국, 혼자된 아이의 보호자를 찾다가, 전화 한 통을 받은 할머니가 병원으로 달려갔고, 다행히 부부의 노력 때문이었는지, 별 부상 없이 병원에서 혼자 울고 있던 아이를 발견했다. 망연자실한 마음도 잠시, 자신을 보고 낯설지 않음에 방긋방긋 웃는 손주의 모습을 보고, 장례식을 마치자, 할머니가 다시 이 동네로 아이를 데리고 내려왔다.     


그렇게 아이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유일한 취미는 트로트 가요를 듣고 부르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목소리 하나로 동네에서 노래 꽤 잘하기로 소문난 할머니였는데, 그런 할머니와 함께 살다 보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트로트를 접하게 되었고, 결국 할머니 앞에서 트로트를 부르며 재롱을 떨었다. 그런데 할머니를 닮았는지, 아이가 노래를 꽤 잘하자, 할머니가 시장에서 주변 상인들에게 자랑하며, 손주가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을 자주 보이게 했다.     


그렇게 그 아이는 할머니의 손에 자라면서, 트로트를 잘 부르고,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한다.     


하도 귀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맛깔나게 트로트를 잘 부르자, 주변 사람들이 말한다.      


"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봐라."     


결국 동네에서 열리는 전국 노래자랑에 나갔다가, 인기상을 차지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었다.     


그렇게 동네명물이 된 아이는 2년 동안 시장에서 5일장이 열릴 때마다, 초대 가수로 초청받아, 트로트를 부르는 트로트 신동으로, 동네 시장을 주름잡게 된 것이다.         


1년 전쯤 TV에서 트로트 경연이 생기자, 할머니와 주변 동네 상인들의 추천으로, 이 아이는 트로트 경연에 참석하기도 했다. 떨지도 않는 당당한 모습으로 결국 본선에까지 올라갔지만, 아쉽게도 어린 나이에 아직 완숙미가 없던 아이는 최종 경연자가 되지 못하고 방송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래도 이 아이의 순수하지만, 구수하고, 밝으면서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와 해맑은 모습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연이 끝나고도, TV에 가끔씩 얼굴을 비추며, 트로트 가수로서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오늘도 방송국에 손주를 직접 데리고 간다. 할머니는 갈 때마다, 찐 감자와 찐 고구마를 가지고 와서 방송국 사람들에게 주며 말한다.     


 "우리 손주 잘 부탁해요."     


방송국에서 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맛깔나게 트로트 가락을 뽑아내며 자신의 끼를 마음껏 뽐내본다.     


아직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지만, 그래서도 아이는 할머니의 함박 미소를 보며,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가 방송국에 내려오면서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나 잘했어?”     


방송국 뒤편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할머니에게 재롱을 부리듯이, 오늘도 열심히 트로트를 부르는 영락없는 7살 아이다. 아이는 오늘도 자신이 최고의 트로트 가수라고 믿고, 마음껏 자신의 목소리를 뽐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어...”     


그렇게 오늘도 사람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주는 딴따라의 모습으로, 할머니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천진난만하게 들려주는 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방송국을 넘어 전국에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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