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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Oct 10. 2024

꿈이 있는 은행원

열 번째 인물

"안녕하세요?"


제법 편안하지만 다소 격식을 차린 치마 정장 차림으로, 아직은 어색하지만 당당하게 까랑까랑 울리는 목소리로 환히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하는 여자다.     


오늘도 하나둘씩 사람들이 몰려오며, 앞자리 의자에 앉아, 자신이 온 이유를 말하고 돈이 오가기도, 도장이며, 서류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바쁜 동네 은행이다.     


적당히 큰 눈과 짙은 눈썹, 흰 얼굴, 적당히 높은 코, 작은 입술.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다. 적당히 마른 몸매에 적당히 큰 키. 아직도 고등학생같이 앳되다.     


그녀는 은행에서 창구직원으로 일한다.       


그녀는 몇 년 전 직장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수소문하다, 우연히 이 동네 은행창구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고, 면접에 어렵게 합격해서 이 동네 은행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녀의 집에서 이곳까지 출근하려면, 적어도 차로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차가 막히는 날에는 버스를 타면, 2시간이나 걸린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침 9시에 출근하더라도 아침 7시 전에는 나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그녀의 사연을 듣고 조언한다. 


"이 동네에서 작은 방을 구해 자취를 하는 게 어때?"      


그녀는 한결같이 말한다. 


 "저는 제 집이 좋아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이제,  2-3년이 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출근길에 늦은 적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적어도 2-3시간 이상은 일찍 집에서 출발하고, 가끔 일찍 도착한 날에는 이 동네 가게에서 간단한 간식으로 아침을 때우며 이 은행에 다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요즘 기사에서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녀가 직장을 잡을 때도 청년 실업률은 높았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직장의 문을 두드렸으나, 쉽지가 않았다. 특별히 학력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대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직장을 잡는 것이 더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교를 가는 게 당연시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대학교 가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툴 만큼 공부를 잘했던 그녀였지만, 자신이 가야 할 길은 공부가 아니라, 직장을 잡아 돈을 버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된 직장 잡기가 어려워 결국 편의점 알바를 전전긍긍하며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고등학교에서 전교를 다투던 성적과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필하고, 열심히 혼자서 준비해 결국, 이 동네 은행에 입사했다.     


그녀는 버는 월급을 족족 적더라도 저축하거나 모았다.     


오늘도 은행 일을 마치고 나온 그녀가 어김없이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정류장 쪽으로 지친 몸을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녀가 버스 정류장 근처 한 가게 문을 열며 말한다. 

    

"아저씨, 오늘은 싸고 좋은 , 나온 거 없나요?"     


아저씨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한다.     


"그때 그 방보다 더 싼 방은 없다니까. 요즘 이 동네가 좋아서, 사람들이 방을 려고 많이들 . 그때 그 방보다 더 싼 방은 없어."     


그녀가 아쉬운 듯 아저씨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한다.     


"저도 어쩔 수 없어요. 그만한 돈을 마련할 사정이 안 되는걸요."     


그녀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저씨, 부탁드릴게요. 잘 좀 알아봐 주세요. 또다시 들릴게요."     


부동산 중개인 사무실을 나와,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매일 오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창밖을 바라보자, 동네의 많은 건물들과 집들이 보인다.     


버스에 내려 그녀가 자신이 사는 마을로 들어간다. 허름한 판잣집들이 나온다. 


제법 오래되고 낡은 집 앞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서는 그녀의 아버지가 분주하게 연탄을 때어 저녁밥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열자, 제법 쌀쌀한 찬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방안에는 오래되어 다 헐어졌지만, 제법 깨끗하게 빨아진 이불이 놓여있고, 그곳에서 '콜록' 거리며 마르고 마른 몸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누군가가 누워 있다. 그녀가 그 사람을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 저 왔어요."     


문을 황급히 닫고, 옷을 갈아입으며 그녀가 말한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그녀의 어머니가 창백한 얼굴에도 미소를 보내며 말한다.     


 "좀 나은 것 같아."     


사실 그랬다. 그녀는 전교에서 1등을 다툴 만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폐암을 오래 앓고 계시고, 그런 어머니를 돌봐야 할 아버지도 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기 전에는,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시며 생계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공사장 인부로 일하시며, 다리며, 팔이며, 여러 곳을 다치셨다. 그러자 그녀가 돈을 벌어 와야 할 가장이 된 것이다.     


적은 돈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은행에서 일하여 나온 월급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래도 은행 복지가 제법 좋아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료비라도 조금은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그녀지만, 밤이 되면 조용한 방 안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 은행상담 직원으로 있지만, 그녀는 언젠가 더 높은 자리에 갈 수 있도록 재정사에 관한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빨리 승진해야, 부모님도 더욱 보필할 수 있고, 돈도 더 벌어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더 효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도 열심히 모은 돈이 조금 생기자, 그녀가 요즘 자신의 직장 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 부모님을 모시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녀가 있는 이 마을은 낡은 판자촌이 즐비해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초 수급자이며, 겨울에는 연탄을 떼 난방을 해야 하고, 여름에도 선풍기 하나 돌리기 쉽지 않아 냉수마찰로 몸을 씻으며 버텨야 하는 곳이다. 

    

그녀는 사실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


어머니의 병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직장이 있는 동네가 제법 오래됐어도, 단정하고 깨끗하며 모든 필요한 시설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2-3시간 전에 나가는 것이 이젠 점점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몇 년 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는 작은 단칸방 월세 집조차 구하기가 요즘 쉽지 않다. 그래도 은행에서 일하면서 가진 큰 복지 중에 하나는 대출을 제법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요즘 동네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부모님과 함께 할 작은 집이라도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일찍 사회생활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가정형편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오늘이 좋다. 


가끔 그녀 어머니의 병세가 나빠질 때마다, 불안하기도 하고, 집에서 아내를 극진히 간호하느라 제대로 자신은 챙기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자신의 어깨에 얹어진 무게가 힘겨워 눈물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도 늦은 저녁을 먹고, 방안 한편 구석에 조용히 앉아, 꺼진 불 틈으로 스탠드를 켜놓고 열심히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한다.


어쩌면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으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연애도 하며, 청춘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녀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며, 조만간 자신의 마을을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직장이 있는 동네에서 살날을 꿈꾸며 최선을 다해 묵묵히 공부한다.     


깔끔하고 깨끗한 동네. 사람들의 인심도 나쁘지 않은 동네. 제법 유명한 명의까지 있다는 동네.


오늘도 늦은 밤까지, 그녀의 열심히 집중하며 볼펜 돌아가는 소리, 사각사각 종이에 메모하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잠든 그녀의 부모님의 숨소리를 넘어 크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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