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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Oct 09. 2024

명의가 된 의사

아홉 번째 인물

오늘도 어김없이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꽉 차있다.


아침 일찍부터 몰려든 사람들이 접수를 하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차 많아진다. 어느새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건물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에게 너무 차갑지도, 너무 친절하지도 않은 적당한 말투와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이는 남자다.     


“들어오세요.”          


뾰쪽하게 긴 얼굴에 보통의 눈, 코, 입. 다소 하얀 피부에 마른 몸, 그리고 보통의 키를 가지고 있다.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모르나 여기저기 흰머리가 조금씩 보인다. 보통의 차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소 오래된 뿔테 안경 속에서 유독 날카롭게 쳐다보는 눈매가 매섭다.     


이 동네 의원 의사다.      


타지에서 살다가, 옆 동네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의사고시를 합격하자, 이 동네에서 의원을 열었다.


옆 동네 의과 대학에 다닐 때, 이 동네 앞 중앙로에 있는 집에서 하숙을 하며 공부를 했다. 밭일하는 할머니의 하숙집이다. 그렇게 이 낯선 동네에서 이 할머니를 두 번째 어머니로 여기고, 이 동네에 마음을 붙이며 학교를 다니다가, 이 동네가 좋아져서, 의사고시에 합격하자, 이 동네에 의원을 낸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이 의원을 각별히 더 좋아했다.


그는 특별히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대면대면하는 성격인데도, 특별히 어르신들에게만은 넉살 좋게, 아들처럼, 때론 꾸중하기도, 때론 설득한다.      


“아버님, 이거 드셔야 해요.”     

“어머님, 오늘도 약 안 드셨죠?”     


그는 그렇게 동네 어른들의 건강을 챙기고 최대한 잘 진찰하니, 동네에서 인기가 많은 의원이 되었다.     


그가 막 의사가 되었을 때는 여자들이 그에게 시집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의사라는 직업을 선호하는 여성들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막 의사가 되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의사고시를 취득하자마자 이제 정식으로 의사가 된 이 남자에게 시집을 가려고 줄을 서는 여자들이 많아졌고, 선 자리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어온 많은 선 자리 중, 그의 어머니가 특별히 엄선하여 주선해 준 선 자리에서 제법 부잣집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처갓집의 도움으로 이 동네에서 의원을 차릴 수 있었다.      


의외로 이 동네에는 의원들이 많지만은 않다. 그래서도, 어디 조금이라도 아프면, 동네에 가까이에 있는 이 의원으로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의사인 그는 밤낮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더 열심히 꼼꼼하게 진찰하니, 더 많은 환자들이 몰렸고, 주말에도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자,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이 의원에서 보내는 그다. 일요일에 가끔 골프를 치기도 했었지만, 나중에는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하느라, 그동안 부족한 휴식을 잠으로 해소하는 것으로 자신의 귀한 휴일을 쓰며, 다소 밋밋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단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아픈 데가 많아지는 어르신들에게 부모님의 병을 치료하는 마음으로, 명의로서의 꿈을 키웠던 그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어릴 적 암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도 아버지를 일찍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자랐다. 아버지의 암을 고칠 의사가 없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안타까웠던 그는, 비록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고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의사가 되어 어르신들을 아버지를 치료하는 마음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것으로 하루하루 의사로서 역할에 충실했다.      


그랬던 그가 몇 년 전부터 혼자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의사로서 병원까지 차려 열심히 일하는 남편의 모습이 좋았다. 동네 병원이 잘 될수록, 벌어오는 벌이가 넉넉해져 갔고, 자신의 처갓집에서 마련해 준 돈들을 성실히 갚으며 자신이 온전히 그 돈을 쓸 수 있게 배려해 준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해가 바뀔수록, 병원에서 환자만 보는 남편을 마주해야 하는 아내로서의 그녀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나 보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좋은 외제차를 사고, 명품 옷으로 휘감으며,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 오며, 나름 부유하고 편한 삶을 유지하는 거라고 남들의 부러움을 샀던 그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그녀는 골프 동호회며, 사교 동호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새로운 사람에게 빠져 의사인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가정만은 어떻게든 지켜보고 싶었던 그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단호했다.


"나를 돌봐주지 않는 건 당신 책임이에요. 또한 우리 집이 아니었으면, 이만큼 성장하는 의원으로 당신이 키울 수 있었겠어요?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요. 우리 이혼해요. 이혼."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르는 이혼 요구에, 그녀가 좋은 변호사까지 선임하여 협의이혼을 요구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그는 자신의 아내와 원만하게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의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잘 살리라 생각했던 외아들인 그가 이제 이혼을 하자, 늙은 어머니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밤중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에게 만이라도 효도하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는데, 의사로서 환자에 몰두하는 직업으로,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이혼까지 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또한, 의사로서 가족의 병을 멋지게 치료하는 싶었는데, 자신이 의사가 되고도 어떤 일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한때 의사로서의 길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회의가 들어서 방황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 힘든 시기, 자신을 많이도 아껴주던 하숙집 할머니가 자신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대변하는 듯 말한다.     


"자네가 잘 살기를 자네 어머니는 바라실 거야. 허튼 마음먹지 말게."      


자신을 위로하며 각별히 챙긴 그분으로 인해, 그가 다시 힘을 내어, 의사로서 진료에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동네에서 계속적으로 잘하는 의원으로 소문까지 나며 동네 명의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있던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새로 이사 온 많은 사람들도, 아프면 가야 할 의원으로 이 의원을 꼽을 지경이 이었다.     


오늘도 그는 자신을 보기 위해 온 환자들을 위해 의원으로 왔다.


자신의 가족은 온전히 지키지 못했지만, 자신의 건강이 온전히 낫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돌보면서, 말하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을 대신하고자 하는 듯, 그가 담담하게 자신을 보러 온 동네 사람들을, 명의라고 그를 찾아온 아픈 사람들을 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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