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 쉼 Oct 07. 2024

쌀밥만 먹는 할머니

여덟 번째 인물

한국은 6.25 전쟁을 겪으면서 폐허가 되었다. 전쟁의 폐허로 인해 전쟁고아들도 많았고, 가난했던 한국은 미국의 원조를 받는 나라였다. 그만큼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대였다. 먹을게 많이 없던 시절, 보릿고개를 경험해야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리밥을 해 먹거나, 옥수수가루를 찐 떡을 해 먹거나, 혹은 때론 끼니를 감자로 때워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과 같은 짙은 살색빛깔의 작은 얼굴에 보통의 쌍꺼풀의 깊은 눈. 작디작은 코와 작고 얇은 입술을 가지셨다. 작고 작은 키에 왜소하게 마른 몸매를 가지고 계셨다. 목소리는 작고 가늘다.   


이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어려운 시절에도 쌀밥을 먹었다.

      

처음에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봤을 때는 이제 막 결혼한 새색시였다. 멀리서 봐도 머리를 반듯하게 쪽 지어 올린 모습이 영락없는 미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남편의 뒤를 몇 보 떨어져 아장아장 쫓아갈 때면, 동네 사람들이 참한 새색시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의 동네 평범한 농사꾼과 결혼하였는데, 아내가 너무 예쁘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이 신혼부부를 보고,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를 논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시집 온 날부터 동네에서 쌀밥만 먹었다. 왜소했던 외모만큼 적은 양의 음식을 먹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마주 하는 일상에서 매일 쌀밥을 먹는 그녀가 동네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동네 사람들이 우연히 식사를 대접했다. 그런데 그녀가 조용히 말한다.     


"저는 쌀밥만 먹어야 해요."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굴값을 하는 게야."     


나중에 사람들이 쌀밥만 먹어야 하는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것을 안 그녀가 더 이상 식사 초대에 응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이상한 식습관은 동네 사람들을 그녀에게서 점차 멀어지게 했다.


어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부잣집에서 온 사람 인가 봐.”     

"쌀밥만 먹어야 했던 자신의 집안을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게지. 보리밥이나 감자만 내놓아야 하는 우리들의 살림을 흉보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녀가 8남매를 낳고, 남편은 농사일을 할 동안, 다른 평범한 농사꾼의 아내들이 그러하듯, 시장에 가서 물건을 파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았겠지."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쌀밥만 고집하는 그녀를 만나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녀는 야채를 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계피를 진하게 우려내어 달콤하게 만든 수정과와 쌀로 만든 작은 떡을 조금 만들어 내다 팔았다. 억척같이 손님을 끌며 화통하게 장사수완이 뛰어난 다른 아낙네들과 달리, 시장에 오는 손님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 하고, 한쪽에 살포시 앉아서, 조용한 어조로 말한다.     


"떡 사세요."

"수정과 있어요."


그러니 시장의 다른 아낙네들의 큰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가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개중에, 가끔 아낙네의 예쁘장한 얼굴에 반한 아저씨들이 가끔씩 떡과 수정과를 사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아낙네들 사이에서 그녀는 기피 대상이었다.     


"왕비마마 상전하듯 대해야 한다고."      


그렇게 그녀를 미운 시선으로 보거나 특이하게 치부하는 동네 아낙네들이 많았다.      


그래서 음식 솜씨도 별 볼이 없을 거라 여겼는데, 우연히 떡과 수정과를 먹어 본 동네 아낙네들은 그녀의 음식 솜씨가 범상치 않게 좋은 걸 알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쨌든 시장에서 장사를 해야 할 만큼, 넉넉하지 않은 사정이라는 걸 안 동네 사람들은 이제 장사가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안 그녀의 생각이 달라졌을 거라 여겼다. 동네사람들이 넌지시 물었다.  

   

“아직도 쌀밥만 먹어?”

"그럼요. 저는 쌀밥만 먹어야 해요."  


그런 그녀는 동네 아낙네들의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누군들 쌀밥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나? 먹을 형편이 안 되고,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부양해야 할 부모님들을 위해서 먹지 않을 뿐이지."      


흉보는 동네 아낙네들을 알기나 하는지, 여전히 똑같은 답을 내어놓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막내아들이 갑자기 병으로 어린 나이에 죽게 된다. 마르고 마르다 못해 삐쭉 말라서 죽어간 그녀의 아들을 바라보고 많은 동네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아낙네가 자신만 쌀밥 배부르게 먹고, 자식에게는 제대로 음식을 먹이지 않아서 죽은 게 아니야?”      

"생각해 봐, 그녀가 매일 먹는 쌀밥만 계산해도, 그 쌀을 시장에 내다 팔아도, 아이는 충분히 먹일 수 있어."

"아니면 그녀가 자신이 먹는 쌀밥을 자식에게 먹였다면, 그녀의 막내아들이 죽을 일은 없었을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게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녀의 아들이 죽고 나서 동네 아낙네들이 그녀를 떠보기 위해 묻는다.


"지금도 쌀밥만 먹어?"     

"네"      


동네사람들이 다시 묻는다.     


"자식들도 쌀밥을 먹나?"      

"아니요"     


그러자 동네에서는 소문이 진실이 되어, 동네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다.


자신만 쌀밥을 먹으며 호위 호식하는 비정한 어머니라는 말로.     


그런데 막내아들이 죽고 나자, 그녀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그녀의 나머지 자식들과 그녀의 남편만이 묵묵히 농사일을 지을 뿐이다. 한참을 지나도 보이지 않는 그녀가 그래도 걱정이 되어 동네 사람들이 남편에게 물었더니,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을 들었다는 아저씨들의 말에, 아낙네들이 그녀의 뒤에서 흉을 보기 일쑤였다.     


"이젠 자식 핑계되며 장사도 접고 아예 상전마마가 되었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흉을 보는 아낙네들의 말을 우연히, 그녀의 남편이 지나가다가 듣게 된다. 평소 소리조차 높이지 않을 만큼, 조용하게 일만 하던 그녀의 남편이 동네 아낙네들이 자신의 아내를 흉보는 것을 보고 놀라며 눈물을 보인다.     


당황하고 놀라는 아낙네들이 처음에는 살살 눈치는 보며 말한다.

     

"뭐 이런 일 가지고 울기까지 하나?"      


그러나 얼마 후, 동네 아낙네들이 따진다.     


"우리말이 틀린 게 있나?"     


그러자, 그녀의 남편이 동네 아낙네들의 말에 하나하나 반박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때 당시는 생소했던 셀리악병을 가지고 있었다. 셀리악병은 글루텐을 포함한 밀가루, 보리, 옥수수 등 글루텐이 포함된 음식을 먹으면, 빈혈, 소화 장애, 설사 등 다양한 병을 일으켜서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게 만드는 상당히 드문 병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잘 나타나지 않은 이 생소한 병과 그것을 이해할 리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병이 어딨어?"     

"쌀이 아닌 다른 곡식을 먹을 때마다, 설사와 복통, 소화 장애와 빈혈을 매일 경험해야 한다면 생활을 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남편의 물음에 동네 아낙네들은 할 말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막내아들은 가난해서, 면역력이 낮아져서 걸릴 수 있는 병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아주 흔했던 폐질환인 결핵에 걸려서 사망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녀는 막내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다가 결핵균에 노출되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격리생활을 하며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사실을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들은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해했음을 알고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녀가 회복되어 동네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착한 아내이자, 어머니인 제 아내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     


그녀의 남편이 간곡하게 부탁하던 모습이 동네 아낙네들의 눈에 아른거린다.


그녀를 곡해했었던 동네 아낙네들이 조금씩 그녀에 대한 오해를 버리고 그녀와 잘 지내기 시작했다.     


"사람은 겪어봐야 해."   


그녀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도 모두 그녀와 잘 어울리기 시작했다.     


시대가 변해서 쌀밥만 먹는 게 아닌, 특별한 사연을 가진 그녀는, 이제 누구나 먹는 쌀밥의 시대를 지나, 이젠 쌀밥을 기피해 가는 시대에서도, 쌀밥만 고집하는 특이한 동네 할머니로 아직도 남아있다.

이전 08화 끼니 묻는 할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