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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Oct 02. 2024

웃픈 여자

여섯 번째 인물

'우리 동네 담뱃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짧은 머리 곱게 빗어 넘긴 것이 정말로 예쁘다네. 온 동네 청년들이 너도 나도 기웃기웃기웃~‘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적당히 살이 찐 중년의 여자분이 옷가게 안에서 옷을 정리하고 있다. 아마 이번에 가지고 온 새 옷을 진열하기 위함인 것 같다. 옷걸이에 스웨터며, 티셔츠며, 다양한 옷들을 하나하나 펴서 걸어놓고, 예쁘게 모양을 잡은 후, 몇 개는 가게 안쪽 벽에 잘 걸어두고, 나머지 몇 개는 가게 밖에 반듯하게 진열해 놓는다.      


한참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옷가게에 들어오며 말한다.     


"엄마, 좀 팔았어?"
 

희고 흰 부드러운 피부에 동그란 얼굴, 눈썹이 제법 짙고, 눈동자가 크고 동그랗다. 입술은 두껍고 빨갛게 반들반들하다. 볼은 땡땡하고, 웃을 때, 입 아래 옆에 보조개가 살짝 들어간다. 코는 납작하고, 콧등이 둥글고 크다. 적당히 살이 쪘는데, 제법 큰 키 때문인지 살이 많이 쪄 보이지 않는다. 머리는 긴 생머리를 뒤로 반듯하게 묶었다.     


그녀는 엄마와 함께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옷가게 아가씨다.      

 

얼핏 족두리를 얹혀놓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동양적인 미인인데, 입꼬리가 올라가며 히죽히죽 웃으면, 영락없는 천방지축, 반전미가 넘치는 여자다. 혼기가 꽉 찬 나이에 아직 미혼인 그녀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뭉쳤을 것 같은 외모인데, 사실 어렸을 때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솜씨를 발휘하던 게 지금은 가족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그녀의 요리를 대접받고 싶을 지경이다. 삼계탕부터, 한국 궁중 요리까지, 자신 스스로 요리책과 TV 등을 시청하며 눈썰미로 한 요리인데 타고난 재능이 있어 보였다동네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요리사가 돼 보는 게 어때?"   


그녀는 단번에 거절하며 말한다.     


"하는 건 재밌는데, 직업으로 하고 싶진 않아요. 내 일이 되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요."     


그런데 실상은 그녀는 결혼해서 남편과 자식에게 매일같이 요리를 대접하는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와~ 우리 딸이 현모양처의 꿈이 있다니. 근데 일은 하다가, 쉬는 날도 있는데, 현모양처 되어 주부가 되면, 쉬는 날도 없이 요리해야 할걸?"    

 

그러자 그녀가 히죽히죽 거리며, 어머니를 간질이며,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나 놀리는 거야?"      


그랬던 그녀지만,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다.   


처음 한 아르바이트는 양말가게에서였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어느 날,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무작정 생각했던 그녀는 그리 넉넉하지만 않은 살림에 일본으로 돈을 벌어 여행을 가야겠다고 혼자 모색한다. 그리곤, 동네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기웃기웃 거리다가 양말가게 아주머니가 양말을 양말 봉투에 하나씩 집어넣는 것을 보곤 냉큼 달려가 넉살 좋게 말한다.     


"아주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더니 얼마 안 가, 그녀가 제안을 한다.     


"아줌마, 저 잘하죠? 저한테 이 일 맡기세요."   


그렇게 첫 일을 따낸 그녀다.      


학교가 끝나면 공부는 안 하고, 양말 가게에서 양말을 양말 봉투에 넣으면서 6개월간을 일해서 용돈을 모았다. 그러더니 어머니에게 [나 잠깐 여행 갔다 올게. 일본으로.]라는 쪽지 한마디를 남기고, 방학이 되자, 비행기 표를 사서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녀의 일본여행은 녹록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가지고 있는 돈만으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비행기 표 사고 얼마 안 되는 돈에 여행하기가 쉽지 않자, 오사카 번화가 신주쿠 거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일본 동포의 작은 옷가게에 사정을 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던 옷가게 사장님이 안쓰러워 일을 시켰는데, 그래도 일본어 몇 마디를 이리저리 묻더니, 그 단어들을 이용하여 이 옷, 저 옷을 추천하며 옷을 잘 파는 그녀를 보고 그녀의 재능에 계속 그녀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며칠만 머물고 갈 일본여행에서 1달이 넘게 옷가게 사장님 집에 얹혀살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일본 신주쿠 거리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엄마, 나 일본 옷가게에 취직했어. 잘 지내니까 걱정 마.]     


그녀의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지만, 별도리가 없다.       


[그래, 잘 지내고 와.]      


그렇게 이메일에 답장했지만, 그런 딸이 웃기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또 서글퍼진 그녀의 어머니였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3살 때 남편을 먼저 일찍 잃었다. 그녀도 어머니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동네 큰 옷 공장에서 옷을 이리저리 떼다가 여러 가게에 납품하는 일을 했었다이 동네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제법 큰 시장이 열리는 이 동네에도 점차 옷가게들이 많아졌고, 이 동네에도 납품을 담당하여, 무거운 옷감을 이리저리 나르며, 트럭하나에 몸을 싣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 동네 한 곳에 옷가게를 하던 아줌마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자였다.     


매일 무거운 옷 짐을 날라오면서도, 특유의 미소와 장난 섞인 위트로 자신에게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장난스럽게 말한다.     

 

"니 나랑 결혼할래? “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가 말한다.     


"하지 뭐."     


그날 당장 둘이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녀가 태어났다.     


트럭하나 가지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했던 그녀의 부모님은, 아이가 태어나자,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이 동네 지하 단칸방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억척같이 돈을 모아, 결국, 작은 옷가게를 할 수 있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화목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장에 납품하러 갔던 남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졸지에 미망인이 된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와 살기 위해, 옷가게에 매진했고, 이 동네에서 그녀를 키워냈다


그녀는 아버지의 손길이 묻어 있는 이 옷가게에서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일을 하는 동안 이 옷가게를 자신의 집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렇게 컸던 아이가 일본에 까지 가서 옷 장사를 하는 재능까지 보인 것이다.

     

그녀는 그 이후에도, 커피숍 알바도 해보고, 패스트푸드점 알바도 해 보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 봤다. 그래도 가장 자신에게 맞고 나은 것이 옷가게에서 옷을 파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가게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녀가 팔던 옷은 젊은 여성과 중년 여성들을 위한 옷이었는데, 그녀가 길게 하늘하늘거리는 꽃무늬 치마에 흰색 블라우스를 예쁘게 입고, 옷가게 밖에서 옷을 하나하나 정성껏 챙기고 정리하면, 영락없이 참한 여인 그 자체였다.

     

그 모습에 반해서, 지나가는 남자 청년들이 살 것도 없으면서 그녀의 가게를 기웃기웃 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그녀였지만, 여성복을 살 이유가 없는 남자 청년들이 그녀에게 “어머니의 옷을 추천해 달라.” 며 말을 걸어오고, 그렇게 또 와서 그녀에게 말을 붙이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그녀가 옷을 골라주며 조신하게 말한다.     


"이게 어떠세요?"    


남자 청년들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좋네요.”     


그러다 이것저것 그녀에 대해 묻는 남자청년들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이 애 마음에 들면, 데려가세요?"    


그녀가 히죽히죽 대며 그분들에게 저돌적이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저 데러 가실래요?"    


놀라서, 얼굴이 발개져서 물건을 고르지 않고 가게를 나가거나, 옷을 재빨리 사서 부끄러워 하며 나가버리는 그들이다.


그러면 그녀가 뒤에서 소리친다.     


"저 데려가시려면, 100억 이상은 있어야 해요."       


한번 장난이 발동되면 그칠 줄 모른다.     


그렇게 하다가 어떤 사람이 대뜸, "데러 갈게요." 하면, 그녀가 당차게 말한다.     


"제가 언제 그랬어요?"

"미쳤어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그러면 그녀의 장난에 자신이 놀아났다는 걸 안 남자들이 조신했던 그녀의 모습과 달리, 대담하고 천방지축인 그녀를 당하지 못해서 포기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지만 그녀도 한 남자에게 빠져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날, 어머니는 옷 공장에 옷을 떼러 갔다. 그런데 진짜 옷가게에서 어머니의 옷을 진지하게 고르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녀가 진지하게 옷을 고르는 남자를 착각하여 말한다.     


"혹시 저 보러 오셨어요?"  


그 남자가 아주 진지하게 말한다.


"제가 왜요?"   


자신이 잘못 착각했다는 것을 그의 표정에서 읽은 그녀가 귀찮은 듯이 말한다.

 

"그럼 알아서 고르세요."    


그런데 그 남자가 한참을 이것저것 꼼꼼히 고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남자를 찬찬히 훑어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매력 있다. 그러자 그녀가 이 진지한 남자가 좋기 시작한다그때, 그 남자도 자신이 좋아하는 줄 착각한 그녀에 황당함을 느끼다가, 그녀를 계속 주시하게 되고, 그러다가 그 남자도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이었다. 그렇게 한 6개월쯤 사귀다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행복에 겨워하던 두 사람이었는데, 결혼식 전날,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서서 집에 가던 길에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된다.     


그녀의 슬픔은 말할 것이 없었다.  결혼식 전날, 남편이 될 사람을 잃어버린 아픔이라.


그렇게 첫사랑이, 그렇게 남편 될 사람이, 그녀를 떠나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 기구한 사건 앞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그를 보낸 후, 하루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울기만 했던 그녀가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옷가게 나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같이 옷을 정리하고, 사람들을 상대한다.


동네사람들도 모두 다 그녀의 소식을 알고 아쉬워하며, 그녀의 안부를 묻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구 어떡해. 어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조심히 묻는다.      


"괜찮니?"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한다.      


"엄마, 나 괜찮아. 적어도 난 미망인은 아니잖아. 남자는 또 만나면 되지 뭐?"     


그렇게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다음날, 또 다음날도, 평소와 같이 옷가게에서 옷을 정리하고, 손님들을 마주한다. 처음에는 호들갑을 떨던 동네 사람들도 하나둘씩 모두 다 이 일을 점차 잊어버린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자, 동네 남자 청년들이, 혹은 타지에서 온 남자청년들이, 그녀의 단아한 모습에 반해서 그녀의 가게를 다시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들이 올 때마다, 그녀는 또 히죽히죽 거리면서 장난을 친다.     


"저 데려가실래요?"     


당황하는 그 남자들에게 그녀가 다시 말한다.      


"근데 어쩌죠? 저 벌써 결혼했는데..."      


그녀의 말에 놀라며, 가게를 급하게 나서는 남자 청년들 뒤로, 히죽히죽, 깔깔깔, 하하호호 대는 그녀의 큰 웃음소리가 옷가게에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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