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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Sep 30. 2024

밭일하는 할머니

네 번째 인물

오후가 되자, 화려한 꽃무늬 몸배 바지를 입고 다소 오래되어 늘어진 작은 꽃무늬 장식이 목선에 놓인 보랏빛 윗옷 입은 할머니 한 분이 호미를 들고 동네에 나타난다.


동네 어귀 가게 앞 중앙로 반대편에 있는 오래된 주택에 살고 있는 할머니다. 오늘도 밭일을 하러 가는 게 틀림없다. 동네의 아래쪽에 사시는 할머니인데, 동네 골목을 20-30분 올라가 조금 더 들어가면 밭이 나온다. 그곳에 일을 하기 위해서다.     


까만 피부에 크고 둥근 얼굴, 크디크고 맑은 눈을 가지셨다. 주름이 많지 않은 맨들 한 얼굴에 납작한 코와 적당히 큰 입, 다소 큰 몸과 적당히 큰 키, 그리고 머리는 짧게 꼬불꼬불 파마가 되어 있다.     


할머니의 나이는 80세가 조금 넘어 보인다.      


이 동네의 골목은 아주 가파르지는 않다. 하지만 제법 경사가 있어서 올라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할머니는 호미를 든 손에 뒷짐을 지고, 천천히, 그러나 재촉하는 걸음으로, 동네 위를 시간을 두고 걸어간다.     


가끔 기차가 지나가는 길목을 지나 기차 소리가 '부우웅' 하고 들리고, 기차가 지나간 후, 가로막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할머니의 소중한 밭이 나온다. 아마 200-300평은 되지 않은 듯 싶은 이 밭은 어떤 이에게는 크게, 또 어떤 이에게는 작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열심히 노력해서 가꾼 밭의 채소들을 시장에 가서 팔아 6남매의 자식들을 모두 키워 낸 중요한 터전이다.     


할머니 밭에서는 특별히 깻잎, 고추,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지금도 동네에 열리는 5일장 시장에 자신이 키운 깻잎, 옥수수, 고추를 빨간 고무 대아에 넣고 머리에 이어 시장에서 내다 팔고 있다. 이미 60년의 세월은 훌쩍해 오던 일일 것이다.     


할머니는 원래부터 이 동네에 사신 것은 아니다. 이 동네에서 살던 남편을 중매로 만나 고향에서 떨어져 결혼하게 될 남편 하나를 보고 이 동네에 정착했다.


다행히 시부모를 봉양하며 처음에는 시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10년 정도 후에 시부모님이 갑자기 지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시면서, 시부모님의 집을 그대로 물려받아 남편과 함께 6남매를 이곳에서 키웠다. 6남매의 자식들은 결혼을 하며 출가하여 이 동네를 떠났다.


다른 도시에 잘 정착한 장남이 할머니와 할머니의 남편을 모시겠다고 함께 갈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완강히 거부하셨다.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할머니는 자신의 남편과 시부모 때부터 있었던 집에서 살며 이 동네에 계속 있게 된 것이다.     


동네가 제법 개발되어 옆 동네에 의과대학이 들어오게 되자, 할머니는 자식들이 다 출가하고 남은 빈 방에 세를 놓아 대학생들의 하숙을 치며 외지로 온 타향살이의 청년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기도 했다.    


할머니가 조금 더 연세가 젊었을 때는 다양한 채소를 심어 팔았다. 감자, 호박, 고추, 당근 등 다양한 야채를 수확하다 보니, 그 야채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잘하는 할머니였다. 그래서 하숙 온 청년들에게 제공되는 반찬의 손맛이 괜찮고, 인심이 좋았던 할머니의 하숙집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해져 하숙집은 늘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손님이 오면 그냥 보내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어렵게 수확한 야채 한두 개, 혹은 그것을 이용해 만든 반찬 한 두 개라도 손에 꼭 쥐어 보냈다. 심지어 유량 하던 스님이나 가난한 거지가 오더라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음식을 대접하던 할머니였다.     


그랬던 할머니지만, 그 당시에 꽤 비싸기로 유명한 꽃을 좋아했다. 가끔씩 꽃을 사 마당에 심고, 마당에 심긴 꽃을 보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무릎 관절이 좋아지지 않고 당뇨도 생기며 몸이 점점 예전 같지 않게 된 할머니였다. 그러나 밭의 일손을 놓지 않았던 할머니이다 보니, 이제 출가해서 자리를 잡은 자식들이 할머니에게 간곡히 요청한다.


"이제 밭일은 그만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밭일을 하고 거기서 수확한 채소를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지금도 묵묵히 해 나가는 할머니다.      


"가끔 다리가 아프면, 쉬어가면 되고. 몸뚱이 아직 멀쩡한데, 무엇하러 쉬냐?"


할머니의 말에 계속 설득하던 자식들도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동네에서는 점차 밭과 논이 없어지고 있었다.


밭과 논이 있었던 자리는 점차 주택과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맨 꼭대기에 있었던 할머니의 밭 만이 유일하게 남았다. 물론 개발하는 사람들이 팔 것을 요구했지만, 할머니는 완강했다.


"시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을 함부로 팔 수 없지."


그러다 보니, 지금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남은 밭이 된 것도 사실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몸배 바지를 입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 호미를 든 할머니가 밭으로 향한다. 


동네를 빠져나가기 위해 골목을 내려오는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오늘도 열심히 밭으로 가기 위해 동네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할머니다. 또다시 할머니가 동네 위에 자리 잡은 밭에서 일을 하면, 기차 소리가 분명히 들릴 것이다. 기차 소리와 함께 반나절은 족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할머니다.     


모든 것이 변해도, 아직까지도 들려오는 기차 소리처럼, 할머니의 밭도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곳으로, 이 동네의 옛 모습을 유일하게 대변하는 장소로 남아있다. 그렇게 할머니는 밭일하는 유일한 아낙네로서 오늘도 이 동네의 옛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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