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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Oct 01. 2024

MZ인 남자

다섯 번째 인물

"나도 MZ야."


이제 40을 조금 넘은 나이에, 동네 20,30대 들이 지나가면, 손으로 주먹을 쥐어 가볍게 마주하여 튕기거나, 아니면 어깨 위로 손을 높이 올려 하이파이브를 요청하는 남자다.     


까무잡잡한 보통의 둥근 얼굴에 찐한 눈썹과 높고 큰 코, 적당히 큰 눈과 풀린듯한 쌍꺼풀. 꽤 작으면서 도톰한 입술을 가졌다. 상당히 고집이 세고 인상이 꽤 강하다. 덩치는 조금 크고 키도 제법 크다.     


처음에는 웃지 않으면, 인상이 제법 험해 보여서, 처음 본 사람들은 혹시나 자기에게 불이익이 없을까 생각해서, 거하게 인사를 요청하는 이 남자에게,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거나, 바쁘게 고개를 숙여 지나가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당황해하던 남자지만, 웃을 땐 순박함이 묻어 나와 그들에게 말한다.     


"부담 갖지 말고 다음에는 꼭 쿨 하게 인사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 남자에게 점차 빠져 들어 이젠 자기들이 먼저 나서서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주먹을 쥐어 가볍게 부딪히며 말한다.     


“형님, 오늘도 파이팅 하세요!"

"오빠, 오늘도?"      


특별히 이 남자는 긴 청바지를 엉덩이 밑 정도로 살짝 걸치고, 펑퍼짐한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 멋을 내며, 머리 위에는 떨어질까 말까 한 큰 앞창 모자를 쓰고, 손가락 몇 곳에 주렁주렁 큰 반지를 했다.     


이 남자는 사실 10대 때, 미국에 유학을 가서 미국에서 유행하던 힙합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미국에 가서 공부는 하지 않고, 힙합과 랩에 관한 CD들을 모으고, TV에서 나오는 래퍼들에 열광했다. 특별히 그는 '투팍'이라는 힙합 레전드 랩 가수를 좋아했다. 또한, 그는 한국 유학생들과 어울려서, 힙합 춤을 배우고, 혼자서 랩을 따라 하면서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몇 년 유학을 갔다가, 한국에 다시 내려왔다. 그때 당시에는 랩이 한국 대중에게 활성화되지 않았었던 시대였다. 한국에서 랩 음악을 접하기 어려웠던 그는 미국 유학시절 모았던 랩 음악들을 듣고, 집에서 랩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알지도 못하는 빠른 말로 내뱉으며 밤낮으로 랩 음악에 심취해 있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어느 순간, 이러다 말겠지.'


그런데 랩을 좋아하던 그가 어느 날 부모님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는다.     


"아버지, 어머니, 저 한국의 래퍼가 될래요."     


처음 미국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 미국의 향수 때문에 그러나 보다 생각하며, 인내를 가지고 있었던 부모님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신도 잘 모르는 이상한 음악인 랩을 하겠다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히 반대가 엄청 심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부모님을 설득하다 지친 그가 동네 골목 어귀, 불빛 아래서 슬리퍼만 신고 후질구래 한 운동복 복장으로 골목에 서서, "휴우"하며 한숨을 쉬는 장면을 동네 사람들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모님을 설득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수한 성적을 내면, 이 일을 하게 해 주세요."  


한 학기 열심히 공부해서 반에서 꽤 좋은 성적을 내자, 마지못해 부모님이 그의 고집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 후, 앨범 제작자를 만나 결국, 한국에서 거의 최초의 힙합래퍼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앨범을 들고 음악 방송 PD에게 찾아가 열심히 홍보하여 겨우겨우 생방송 음악방송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물 빠지고 구멍 난 긴 청바지를 엉덩이쯤 까지 내리고 질질 끌면서 큰 통의 힙합 옷을 입고, 현란하게 힙합 춤을 중간중간 추면서 빠르게 랩을 뱉어 내는 그의 모습에,  방송사에서는 품위유지에 실패했다고 징계까지 먹었다. 방송 PD가 짜증을 낸다.     


“너 때문에 징계를 먹었어. 이렇게 입고 오면 어떡해?”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게 힙합이고, 이게 랩입니다. 아직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제가 그 선구자의 길을 걸어 보겠습니다. “     


방송 PD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다음부터는 방송출연은 어려워."


그래도 특이한 복장에 빠르게 말을 리듬에 맞춰 뱉어 내는 그의 모습에 10대 들한테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모양이다. 방송 PD가 전화가 와서 말한다.


"그래도 반응이 조금 있더라고. 네 음악을 구할 곳을 찾는다는 애들이 방송국으로 연락이 왔어."


그 말을 듣자, 그 시절에 앨범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가야 했던 레코드사 사장님들을 끈질기게 졸라서, 결국 자신의 앨범을 레코드사에 입점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리어카에서 앨범을 파는 분들에게 넉살 좋게 말해서 판매하기 시작한다.


1년 후, 그는 다 해서도 만장정도의 앨범 판매를 기록한다. 그때는 인기가 많으면, 100만 장은 거뜬히 넘기는 시대였다.     


그는 부모님과 처음부터 약속했었다.     


“1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공부에 전념하겠습니다.”


결국, 그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국의 래퍼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 시절에는 TV에 나오면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처음 그가 방송에 나올 때,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반가워했다.


"쟤 그 애 아닌가?"

"우리 동네의 자랑이다."      


그런데 그 이후 자취를 감추자, 동네사람들이 궁금하기도 해서 조심히 물어봤다.


"요즘은 음악 안 하나?"


그러자 그가 아쉬운 표정으로 담담하게 답한다.     


"저 이제 그만뒀습니다."    


동네사람들도 그 말에 그와 함께 아쉬워했다.     


비록 한국에 거의 선발 주자로서 오랫동안 활동 하지 못한 래퍼이자 힙합가수였던 그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 동네에 작은 음악가게를 열었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고, 또 남들에게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물론 동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중에 새로 이사 온 사람들, 그리고 이 동네를 우연히 들린 타지 사람들까지, 자신의 음악가게에 손님들이 들어오면, 그는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주며 분위기를 띄운다.


"제가 미국에서 부터 힙합과 랩을 좋아하게 돼서 한국에서 잠깐 힙합 랩 가수로 활동했었어요. 그때는 말이죠..."     


그가 한국에 랩가수로 활동을 마치고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에 힙합과 랩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힙합 춤에 국한되던 힙합풍 음악이, 결국 랩으로까지 퍼지고, 그리고 한국의 랩 경연프로그램과 함께 본격적인 유행을 타며 래퍼들이 단숨에 인기를 얻고,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 경연프로그램을 바라보며 자신의 옛 추억을 떠올리던 그도 사실은 그 경연 프로그램에 [한국에 10년 전 랩 음반을 냈던 선구자 래퍼]라는 애칭으로 또다시 TV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냈다.


열심히 경연하고 준비하여 예선을 통과한 그는 결국, 본선에 까지 진출한다.


동네 사람들은 TV에 나오는 그를 보고 다양한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너 진짜 멋있더라."

"형님, 진짜 짱입니다."

"오빠, 최고예요."     


그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열심히 경연에 참가하여 마침내, 그 경연프로그램 1등을 차지하고 만다.


그는 사실, 그동안 음악가게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자신이 좋아하는 랩을 계속 듣고, 부르고, 연습하고, 또 만들어가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경연에서 그동안 준비해 둔 자신의 실력을 모두 뽑아내어, 마치, 억눌려 있던 꿈을 마음껏 펼치듯 랩을 하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왠지 짠한데, 그의 열정이 랩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결국, 아저씨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됐는지 모르는데도, 아직도 찢어진 통 큰 청바지를 엉덩이쯤 내리고, 펑퍼짐한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큰 쇠목걸이로 포인트를 준 그가 동네를 바삐 빠져나간다.


이제,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어, 방송국과 콘서트,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대학축제까지 누비며 랩을 하는 래퍼인 그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는 "오빠", "형" 하며 부르는 20, 30대의 MZ들과 쿨 하게 하이파이브나 주먹인사를 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에게 짙게 남겨진 스웨거는 이제 이 동네를 넘어, 랩과 힙합에 열광하는 많은 팬들에게 까지, 쿨하게, 힙하게, 다가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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