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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Oct 03. 2024

끼니 묻는 할아버지

일곱 번째 인물

“밥 먹었나? 밥 안 먹었으면, 먹고 가라.”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로, 안부로, 늘 같은 말을 하던 할아버지다. 그러자 한때, 동네에서 이 할아버지를 만나면 내가 식사를 제대로 했는지 상기시켜봐야 했다고 한다.      


까무잡잡하지만 매끈한 얼굴에 크고 짙은 눈, 적당한 크기의 코와 입. 머리숱이 많이 없어 가운데가 민머리다. 그런데도 다소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보통의 키를 가지고, 적당한 체격을 가지셨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셨다.


처음부터 농사꾼으로 시작한 농사일에 수환이 좋아 동네 다른 사람들보다 농사로 수확을 많이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돈으로 주변 땅을 조금씩, 조금씩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 땅이 제법 동네에서 많아졌고, 수확할 땅이 많아지자 만석꾼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모은 돈으로 또 동네의 큰 땅을 사서 과수원을 시작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 할아버지 집에는 사과, 감 등 과일이 넘쳐 났다. 그래서 할아버지 집의 곳간에는 쌀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을 광주리에 담아 겨울에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는 아내와 옆 동네에 살다가 결혼 후, 이 동네로 들어왔다.  논과 밭이 쾌 크게 형성되었던 이 동네에서 열심히 일하여 조금씩 모은 돈으로 농사 지을 땅 한필을 사서 열심히 농사일을 성실히 한 게 시작이었다.    


할아버지 집이 얼마나 부자였는지. 할아버지가 조금 더 젊었을 때는 이 동네에서 TV를 가진 집이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에만 유일하게 TV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에서 동네사람들이 함께 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할아버지 집으로 온 동네사람들이 뉴스며, 스포츠, 드라마 등 각종 쇼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주말 저녁에 왁자지껄하게 온 동네사람들이 모여 작은 TV 앞에서 함께 환호하고,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집안 곳곳을 치우는 할아버지의 아내가 방에서 치운 모래가 한 줌은 되었다.

 

이 동네에 부자로 살다 보니 할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인상 좋은 할아버지를 노리고 다른 동네에서 온 사기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자한 할아버지였지만 웬만해서는 사기에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정이 너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오래된 친척이라며 자신의 옆 동네 고향에서 찾아온 한 먼 고향 친척의 보증을 잘못 서 자신의 재산이 가압류되어 재산을 빼앗길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똘똘하게 키워낸 5남매 자식들이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법원에서 재판장에게 요청하여 재산을 다 빼앗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시는 보증도 서지 않고, 낯선 사람들을 많이 경계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던 할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갑자기 파병가게 되었다.


동네 사람이 말한다.


"농사짓고 가정을 꾸리며 살다가 군대에 가야 하는지도 잘 몰랐던 할아버지는 군대 미복무자로 파병에 참가하라는 국가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했다고 했어."


"아참, 그분이 예비역이었던가 해서, 갑자기 베트남으로 파병됐지. 아마도"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베트남전쟁에 참여했고, 다행히도 베트남 전쟁에서 특별한 부상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베트남 전쟁 참전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던 것 같다.


파병 후 돌아와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전쟁의 참사와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을 조금씩 겪기 시작했다. 기억이 조금씩 나빠지고, 자주 힘들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다 결국,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할아버지의 아내도, 5남매 자식들도, 할아버지의 증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점차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점차 기억력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할아버지를 목격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을 나서 자신의 논에 농사일을 하고 오겠다던 할아버지가 밤새 돌아오지 않자,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찾아 헤맸다. 그날, 동네 앞, 남의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있던 할아버지를 발견한 동네 주민의 도움으로 할아버지를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다.     


바로 병원으로 데려간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치매'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아야 했다.


그때 당시엔 치매를 치료하는 약도, 늦추는 약도 마땅치 않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치매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래서 동네를 잘 돌아다니시지 않은 할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가끔 동네를 나가면, 자주 동네에서 길을 잃고 집을 찾아오지 못해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의 걱정을 키웠다. 그래도 동네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서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날들이 많았다.     


농사일도 자식들에게 맡기고, 집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아내의 보살핌을 받던 할아버지였는데, 나중에는 치매의 증상이 나빠져서 할아버지가 혼자서 몰래 집 밖으로 나가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이 동네를 벗어나, 다른 동네까지,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할아버지를 발견한 할아버지의 자식들과 아내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할아버지의 야위고, 혼란스럽고, 아픈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들이 할아버지의 아내에게 제안했다.


"이제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할아버지의 아내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니들 아버지의 힘듦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니들 아버지를 그곳에 두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아내도 남편을 어떻게든 지켜내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다. 그래도 남편 곁을 묵묵히 지키던 할아버지의 아내였다.


가끔 정신이 돌아와, 자신만큼이나 자신을 간호하느라 야위어 가는 아내의 모습에, 자신에게 닥친 불치병에,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내에게 말하곤 했다.     

 

"미안하구려."    


자신의 아내의 고생을 덜어 주고 싶었는지, 아니며 자신의 아내에게 조금 더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였는지, 치매 판정을 받은 지 몇 년이 지나 할아버지는 자신의 평생 기쁨이 되어준 동네에서, 오랫동안 머물던 집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다 돌아가셨다.     


동네사람들의 식사여부를 묻고, 챙기며, 인사하던 할아버지는 가난하던 시절 열심히, 성실히 일해서 이 동네에 터전을 잘 마련했었는데, 결국 전쟁에 파병된 후, 후유증으로 생각지 못한 치매에 걸려, 나중에는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하셨다.     


그래도 그 가난한 시절, 동네 골목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 마다 인자하게 물어보던 할아버지의 "밥 먹었나?"라는 늘 같은 따뜻한 인사 한마디는 동네사람들의 가슴에 배고팠던 시절의 따뜻한 추억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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