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만나는 일은 쉽다. 그냥, 만나면 된다.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냥 인연이라고 단언하면 그건 인연이 된다. 그는 정말 누군가를 사귀는 일이 쉽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시작하는 건 너무 쉬웠다. 술 한 잔, 맛있는 식사, 그리고 약간 취한 상태로 하는 산책. 세 가지면 히틀러와 링컨도 금세 키스를 나눌지도 몰라. 그는 생각했다.
너무도 어려운 것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그 탈피의 과정들을 떠올렸다. 두통에 머리가 깨질듯했다. 왜 인연은 그토록 쉽게 시작되면서 어렵게 진행되고 실망스럽게 끝나는가. 그는 더는 노력 따위는 믿지 않았다. 상대는 늘 벅차게 다가와서 관계를 망치기 일쑤였다. 절대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적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자리에 누워버린 것이다.
여보, 자기, 오빠, **씨…. 호칭이 많기도 했다. 갔던 곳을 또 간 것은 물론이고 겪었던 싸움을 또 해야 했다. 무던해질 법도 하건만, 충격은 그대로, 아니 때로는 배가 되어 돌아왔다. 여름 날씨에 체한 듯 명치 끝이 받혀왔다. 멀미였다. 그는 인연 따위에 이제 멀미가 났다. 한참을 그런 기분으로 벤치에 누워있던 그가 쌀쌀한 바람을 느낄 때쯤, 어린 연인이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는 마지못해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던가? 그녀가 옷을 고르던 가게를 비롯한 모든 상점가의 불이 꺼진 채였다. 다급하게 그를 부르던 연인도 어둠 사이로 숨은 듯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