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시작한 지 6개월 째,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식물들의 수가 꽤나 늘었다. 아버지의 엄나무, 어머니의 치자나무, 애인의 용신목, 제일 처음 들인 싱고니움, 왠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무화과, 회사의 테이블야자와 스파티필름, 그리고 여러 허브들까지. 예닐곱의 식물을 곁에 두고 살면서 배운 것을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튼튼한 녀석과 그렇지 않은 녀석이 있다. 같은 종이어도 유난히 강골인 녀석이 있으면 그냥 여기저기 아프기만 한 애도 있는 것이다. 내 옆자리 남과장님과 내가 분명 같은 인간임에도 나만 골골대며 병가를 남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둘째, 물은 배고플 때 주어야 병이 없다. 식물을 키우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손가락으로 흙을 찔러 한마디 정도가 건조하면 물을 주라는 말에 대부분의 식덕(식물덕후)들이 동의한다. 물이 필요하지 않을 때 물을 주면 ‘과습’이라 하여 식물도 노랗게 병이 든다. 용신목과 테이블 야자를 키우며 나는 그 병을 자주 만났다. 누군가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사람이 원하지 않을 때 지레짐작으로 나누고 관계가 발전하길 바라는 건 오히려 관계를 망치는 일이다. 친구들에게 선심을 쓰면서, 여기저기 함께 다니자고 이야기하면서, 많은 관계들이 병들었던 기억도 있다.
셋째, 식물이 자라는 것은 의외로 운명에 달렸다. 내가 아무리 공들이고 사랑하더라도 엄나무는 몸을 비틀고 잎을 모두 떨군 채 바짝 말랐다. 같은 조건에 심어둔 세 개의 허브도 성장이 제각각이고 벌써 한 녀석은 죽어서 동거인의 슬픔을 사고 있다. 무화과는 내가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열매를 맺고, 용신목은 과습 상태로 여전히 버티고 서있다. 그러니까, 집착하고 깊이 고민할 필요는 사실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살아오며 생겼던 수많은 고민들의 정답은 그저 지켜보는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식물에게 기대어 나의 첫 독립,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에어컨 없는 이 작은 집. 식물도 나도 푹푹 익어가는 계절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