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편]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2017년 5월
남편과 내 나이, 이십 대 중반.
또래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 잦은 해외출장으로 몸이 많이 망가져 있던 터라
겸사겸사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고,
별생각 없이 받은 산전검사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들었다.
"임신이 쉽지 않겠네요. 본인 상태 모르셨어요?"
예상치 못한 의사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고,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임신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신혼의 시작과 동시에 나는 필사적으로 엄마가 될 준비를 시작했다.
2018년 7월
딱 반 년 만 자연 임신을 시도해 보고,
안되면 난임병원에 가기로 했던 우리 부부.
계획을 세운 지 5개월 만에, 우리에게 기적 같은 생명이 찾아왔다.
내 몸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놀란 듯 내게 물었다.
"자연임신 하신 거예요?"
"이 아이는 정상 임신 1/10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엄마에게 와준 거예요.
벌써부터 효도를 하네."
아이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엄마, 걱정하지 마요!"라고 말해주 듯
내 좁은 뱃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알렸고,
그렇게 9개월 뒤 나는「엄마 」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2019년 2월
너무나도 귀하게 얻은 아이.
그러나 엄마가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부터 조리원까지 사람들은 날
"산모님" 이나 "어머님"이라고 불렀고,
늘 제 이름으로만 불렸던 내게
그 호칭들은 벅찬 책임감과 함께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매일이 똥 치우기, 우유 먹이기, 세탁, 설거지 지옥의 반복.
그 속에서 어느새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희미해졌고,
결국 우울감을 견디지 못한 나는
직장을 핑계 삼아 휴직 6개월 만에 복직을 택했다.
친정엄마와 하루종일 보내다
저녁에야 겨우 엄마를 만날 수 있던 나의 아이는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베란다 창문까지 기어가
내가 내리는 버스정류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 얘기에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마음 한편이 무너지듯 아팠지만,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아이만이 나의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2025년 1월
"너 계속 이러면 엄마 너랑 대화 안 해."
"밥 안 먹어? 그럼 어쩔 수 없지. 굶는 것도 네 선택이야."
"빨리 좀 해! 엄마가 언제까지 널 기다려줘야 해."
"하루에 '엄마' 100번만 불러. 엄마 귀에서 피 날 거 같아."
어느덧 8살이 된 아이와 매일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며,
나는 이런 말들을 쏟아내곤 한다.
뒤돌아서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아이의 사진을 보며 눈물 흘릴 걸 알면서도,
순간의 힘겨움과 지친 마음에
나는 또 다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오늘 아침도 똑같았다.
서로 얼굴을 붉힌 채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며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아이의 행동을 고자질했다.
내 얘기를 들으며 허허 웃더니 부모님이 꺼낸 한 마디.
"너 어릴 때랑 똑같네. 네 새끼가 너 닮아서 그러는 건데, 우리 손주한테 왜 화를 내니?"
"아니! 나 키울 땐 맨날 혼냈잖아! 그래놓고 왜 나무(가명)가 그러는 건 괜찮대? 어이없어."
부모님은 잠시 웃더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래서 지금 후회하잖아.
그때 그렇게 엄하게 혼내지 말걸. 버릇없이 클까 봐 들이잡지 말걸.
너도 나중에 나무 커봐. 분명 후회한다?
그 시간은 억만금을 준다 해도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절대로."
부모님의 말을 듣고 나니,
아침에 아이를 째려보던 내 모습과
억울하고 속상해 울먹이던 아이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 걸. 상처주지 말 걸.'
그 생각이 들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이미 알고 있는 건데, 매일 다짐하는 건데,
나는 왜 여전히 이렇게 부족한 엄마일까?
부모 마음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평소 좋아하던 나태주 시인의 책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지금의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시 한 편을 발견했다.
부모 마음이 다 그래
다른 사람 아이 아니고
내 아이기 때문에
안 그래야지 생각하면서도
생각과는 다르게
속이 상하고
말이 빠르게 나가고
끝내는 욱하는 마음
아이를 몰아세우고
아이를 나무라고
나중에 아이가 잠든 걸 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되는 마음
새근새근 곱게 잠든 모습 보면
더욱 측은한 마음
사람은 언제부터 그렇게
후회하는 마음으로 살았던가
측은한 마음으로 버텼든가
부모 마음이 다 그래
그래서 부모가 부모인 것이고
자식이 자식인게지
그게 또 어길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이고
고귀한 약속이고 그럴 거야
<나태주 시인 _ 부모 마음>
바쁘고 지친 하루 속에서 매일을 따뜻하고 다정한 부모로 살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마음에 내가 안식처가 될 수 있기를.
서로 속상하고 실망하는 날이 있더라도,
뒤돌아서면 결국 네가 기댈 곳이 부디 엄마이기를.
엄마가 준 사랑의 힘을 방패 삼아,
네가 이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나갈 수 있기를.
엄마는 오늘도, 그리고 매일 노력하고 또 노력할 거야.
부모 마음이란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