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편] 흐린 눈이 미덕인 시대, 정말 그래야 할까?
오랜만에 초등학생인 아이와 함께 하교 후 잠시 놀이터에 들렀다.
학원 시간 때문인지 놀이터는 한산했고, 한쪽엔 여중생 셋이 바닥에서 컵라면과 간식을 먹으며 앉아 있었다.
주위 시선에 아랑곳 않고 욕설을 섞어 떠드는 말이 계속 들렸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려 했다.
그런데 잠시 뒤, 아이들은 먹던 컵라면과 음료수, 젓가락까지 그대로 바닥에 내던지고는 자리를 뜨려 했다.
바닥엔 라면 건더기가 흘러 있고, 쓰레기는 놀이터 모래 여기저기로 흩어져버렸다.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나는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내 부름에 돌아본 아이들의 표정은 ‘뭐야 저건?’이라고 말하는 듯 무표정하고 차가웠다.
“이거 너희가 먹은 거 맞지?”
“맞는데요.”
“그럼 이렇게 버리고 가면 안 되지 않아?”
“네.”
대답은 했지만 행동은 달랐다.
곧이어 비아냥대는 웃음이 새어 나왔고, 쓰레기를 줍기는커녕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버티고 서 있었다.
"너희 00중학교 학생들이지?
내가 지금 너희한테 하면 안 되는 말이라도 한 거니?"
학교 이름을 듣고서야 아이들은 잠시 움찔하더니 그제야 바닥의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내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놀란 아이의 눈을 보자, 입술이 먼저 닫혔다.
뒤돌아 선 내 등 뒤로 작게 욕설이 들려왔지만, 사춘기 청소년들의 흔한 객기임을 알기에 흘러넘겼다.
집에 돌아와 이 일을 이야기하자 지인들로부터 돌아온 답은 대부분 같았다.
“그냥 못 본 척하지 그랬어.”
“요즘 애들 무서워. 괜히 건드리면 큰일 나.”
"흐린 눈 해야지 괜히 엮이면 안 돼."
그 말들 속에 담긴 체념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눌렀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행위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했다.
나도 사춘기를 지나왔고, 그 시절의 거침없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괜히 욕을 섞어 말을 보태고, 침도 한 번 뱉어보고, 강한 척 하고 싶었던 순간들.
하지만 그 시절 내게는 잘못을 조용히 짚어주던 어른다운 어른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그 역할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잘못된 행동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
그 침묵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늘, 작은 놀이터에서 시작된 질문 하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 속에서 가볍지 않은 씁쓸함과 울림으로 남았다.
아마도 이건, 나만의 질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을 말하길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어른을 길러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