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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Jan 22. 2019

an Editorial (B) 산 책과 걷는 시간 #2

오싹한 청소 / 해은

도통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써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사이 서른이 되었습니다조금 더 아득해진 날들의 빈칸을 유의미하게 채워보고자, 영화책방 35mm를 운영하는 미화 작가님과 함께 콘텐츠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냉온의 차이가 큰 두 작가가 월 수 금요일마다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2019년 1월 9일 수요일부터 배달되고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댓글, 혹은 eun10532@naver.com를 통해 무료구독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더 읽히고 싶은 저희의 눈 밝은 독자가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요일: 해은의 ‘산 책과 걷는 시간’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을 걸으며 말했습니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라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사고 일주일 동안 낯선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저야 대부분 서울 한복판을 걷겠지만, 언젠가 런던을 산책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an Editorial (B) 산 책과 걷는 시간 #2 아무튼, 계속 / 해은



아무튼, 계속 : 오싹한 청소


 한창 ‘나나’나 ‘뽀’를 좋아할 무렵부터 나는 자연스레 과자 부스러기를 최소화하며 베어 먹는 법을 터득했다. 이왕이면 한 입에 먹는 게 엄마와 나의 정신건강에 좋았을 테지만 당시의 입 크기로는 어림없었다. (그때의 버릇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제 어지간한 크기의 감자칩은 입을 무리하게 벌려서라도 한 입에 넣고 씹는다.) 웨하스나 쿠크다스처럼 포장을 뜯는 순간부터 엄마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과자는 선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먹기 어려웠다.

  걸레와 함께 엄마의 또 다른 용병은 투명 박스 테이프였다. 나는 엄마가 매일같이 경건하게 두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는 모습보다 아침과 저녁 사이 수차례씩 테이프를 찍찍 거리며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게 더욱 못마땅했다. 뭐랄까, 걸레질은 차라리 어떤 의식처럼 느껴져서 참아줄(?) 여지가 있었다. 어김없이 화장실에서 걸레 적시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어지간해서는 있던 자리를 옮기지 않고 엄마의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엄마가 네 살 난 나를 선반 위에 앉혀 놓고선 “엄마 청소가 끝날 때까지 내려오면 안 된다”고 말한 일화는 물론 내 기억에는 없지만 친척들 사이에서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일화다. 용케도 떼를 쓰거나 객기를 부리지 않고 그저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얌전히 앉아 있던 제 모습이 무의식에 새겨졌던 걸까. 아무튼 나는 엄마의 청소를 ‘존중’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럼에도 테이프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병적으로 먼지를 떼어내는 엄마의 예민함은 때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빠와 나의 맨발바닥까지 미치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나는 아빠가 어떻게 미치지 않고 엄마를 견디며 살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건 지금도 사랑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다행히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혹은 나와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이틀에 한 번씩 청소를 할 만큼 게을러졌고, 은퇴를 앞둔 아빠는 엄마의 청소 주기가 조금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용한 청소기를 홀로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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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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