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에게 / 해은
도통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써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사이 서른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아득해진 날들의 빈칸을 유의미하게 채워보고자, 영화책방 35mm를 운영하는 미화 작가님과 함께 콘텐츠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냉온의 차이가 큰 두 작가가 월 수 금요일마다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2019년 1월 9일 수요일부터 배달되고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댓글, 혹은 eun10532@naver.com를 통해 무료구독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더 읽히고 싶은 저희의 눈 밝은 독자가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요일: 해은의 ‘산 책과 걷는 시간’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을 걸으며 말했습니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라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사고 일주일 동안 낯선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저야 대부분 서울 한복판을 걷겠지만, 언젠가 런던을 산책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an Editorial (B) 산 책과 걷는 시간 #4 i에게 / 해은
i에게
시를 모르지만 종종 시를 읽는다. 시를 안 읽는 사람이 보기에 나는 시를 즐겨 읽는 사람처럼 보이므로 종종 시집을 선물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대낮이나 늦은 오후에 나를 떠올리며 생전 처음 서점에 들러 어쩐지 긴장된 손바닥으로 시집의 표지 따위를 슬쩍 쓸어 보았을 이들이야말로 진정 시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시를 모르고도 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그동안 아는 만큼 뻔뻔해왔던 걸 생각하면 차라리 모르고 짐작하는 편이 덜 창피할 테다), 시는 무언가를 기꺼이 하는 일 같기 때문이다. 기꺼이 꿈꾸고 기꺼이 슬퍼하고 기꺼이 불행하고 기꺼이 죽지는 못하고 기꺼이 연민하고 기꺼이 춤추거나 울고 기꺼이 먹고 잠들며 마침내 기꺼이 쓰는 게 시 같다. 그러니 여자애한테 처음 꽃을 건네는 남자애처럼 머뭇거리며 시집을 선물한 이들의 마음을 기꺼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요 며칠 좋아하는 책방에 들를 때마다 시선을 뺏기던 시집이 있었다. 두껍고 육중한, 무엇보다 책등을 찢고 나와 내게 말을 걸 것 같은 적극적인 제목의 책들 사이에서 옅은 커스터드 크림색의 얇은 시집은 오히려 쉽게 눈에 띄었다. 마침 두 권이 나란히 붙어 있는 탓에 꼭 가르지 않은 젓가락 한 쌍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시집은 자백처럼, 독백처럼 이름 붙여져 있었다. 『i에게』라고. 세상의 모든 아이와 i를 생각하며 실로‘i’처럼 생긴 시집 한 권을 챙겨 나왔다. 책방에 홀로 남은 다른 한 권은 어떻게 되었을까. 뒤늦게 시집의 입장을 생각하며 표제작 「i에게」를 읽었다. 시인은 첫 행을 이렇게 써놓았다. ‘밥만 먹어도 내가 참 모질다고 느껴진다 너는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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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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