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해은
도통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써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사이 서른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아득해진 날들의 빈칸을 유의미하게 채워보고자, 영화책방 35mm를 운영하는 미화 작가님과 함께 콘텐츠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냉온의 차이가 큰 두 작가가 월, 금요일마다 책과 영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2019년 1월 9일 수요일부터 배달되고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댓글, 혹은 eun10532@naver.com를 통해 무료구독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더 읽히고 싶은 저희의 눈 밝은 독자가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월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일: 해은의 ‘산 책과 걷는 시간’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을 걸으며 말했습니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라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사고 일주일 동안 낯선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저야 대부분 서울 한복판을 걷겠지만, 언젠가 런던을 산책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an Editorial (B) 산 책과 걷는 시간 #5 <죽는 게 뭐라고> / 해은
죽는 게 뭐라고
지금도 별다를 바 없지만 그동안의 나는 먹고사니즘에 지독히도 성실했다. 근검절약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탓도 있겠으나, 내가 봐도 나는 그들보다 좀 더 악착같은 구석이 있다. 정작 내 부모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적어도 자신들의 어린 시절보다는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평생을 애썼는데도 나는 부모의 노고와 무관하게 결핍이 많은 아이로 자랐다. 그건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콤플렉스였다.
나의 유년기와 십대를 돌아보면 부모에게 무엇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전에 (특히 물질적인 부분에서) 이미 대부분의 것들이 어느 정도는 충족되어 있었는데, 가령 이런 식이었다. 유난히 옷과 신발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나는 중학교 때부터 그녀의 옷장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아빠는 타지로 출장이 잦았던 탓에 딸이 느낄 당신의 부재를 용돈으로 채워주려 했다. 아빠의 낡고 얇은 반지갑 안에는 그나마도 모서리나 중앙부가 심하게 헤진 돈이 대부분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빠는 개중에서 가장 빳빳한 놈을 골라 내게 주곤 했다. 문제는 모든 것들이 대개 나의 취향이나 감정의 타이밍을 고려하지 않고 제공되기 일쑤였다는 데 있었다.
그러니까, 또래 친구들이 새하얀 나이키 포스를 신고 너나할 것 없이 레스포삭 가방을 멜 때 나는 엄마가 아끼는 가죽 백팩에 교과서를 넣고 그녀가 동대문에서 고민 끝에 골랐을 색깔이 화려한 운동화를 신었던 것이다. 어느 날엔 내가 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들엔 은근히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애써 모른 체 했다. 유난히 후자의 기분에 사로잡힌 날이면 식판에 그날 가장 맛있는 반찬을 받다가도, 친구와 과일빙수를 먹다가도, 노래방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문득문득 모종의 죄책감 같은 걸 느끼며 스스로에게 마구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아마 나는 부모가 내게 주려한 모든 것이 자연한 여유에서 비롯된 게 아니란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딸을 둘러싼 세상에 지레 겁을 먹고선 다만 언제나 최선의 것을 마련해 펼쳐 보이고 싶었던 그 마음을. 문득 사십대 초반의 얼굴을 한 그 시절의 부모를 떠올리니 귀엽고 애틋한 기분이 든다. 젊고 미숙하고 그래서 뭐든 열성일 수 있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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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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