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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r 03. 2019

an Editorial (B) 산 책과 걷는 시간 #6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 해은

도통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써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사이 서른이 되었습니다조금 더 아득해진 날들의 빈칸을 유의미하게 채워보고자, 영화책방 35mm를 운영하는 미화 작가님과 함께 콘텐츠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냉온의 차이가 큰 두 작가가 월, 금요일마다 책과 영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2019년 1월 9일 수요일부터 배달되고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댓글, 혹은 eun10532@naver.com를 통해 무료구독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더 읽히고 싶은 저희의 눈 밝은 독자가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월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일: 해은의 ‘산 책과 걷는 시간’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을 걸으며 말했습니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라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사고 일주일 동안 낯선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저야 대부분 서울 한복판을 걷겠지만, 언젠가 런던을 산책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an Editorial (B) 산 책과 걷는 시간 #6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 해은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다시 또 공항에 홀로 남겨졌다. 세차게 흔들던 오른손을 가만히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익숙한 안녕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의 막차 시간을 확인한 뒤 사람들과 가능한 한 넓은 간격을 두고 앉을 만한 곳을 찾았다. 일요일 저녁의 공항은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 돌아오는 사람과 혹은 돌아가는 사람들로 예외 없이 북적였는데도 애인의 뒷모습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이 넓은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무도 내가 어디로 떠나는지, 혹은 돌아가는지, 곧 함께 떠나거나 아니면 나에게로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갑자기 무언가 잃어버려 이러지도 저러기도 못한 채 발이 묶여버린 건지 궁금해 할 리 없었으므로 나는 ‘심리적 혼자’에 점점 더 가까워져가는 채로 공항을 서성거렸다.

마침내 자리를 잡고 그간 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은 책을 꺼내자 모서리를 접어둔 페이지가 가장 먼저 펼쳐졌다. 서문과 목차를 지나 첫 단편이 시작되기 전, 한 줄의 문장이 마치 포춘쿠키의 메시지처럼 얇게 끼어 있었다.

‘그건 어떤 이별에 대한 뒤늦은 실감이자 그리움 같은 것이었고 동시에 미안함이기도 했다.’

나는 이 문장이 책에 실린 열아홉 편의 짧은 소설 중 한 편에 수록된 말인지 아니면 그저 작가가 곧 책을 읽어나갈 독자에게 반드시 일러두고 싶은 감정이었던 건지 헷갈렸다.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책이었는데도 좀처럼 특정 단편과의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했다. 페이지 번호도 적혀 있지 않은 멀끔한 여백 위의 문장은 소설집과 전혀 무관한 존재로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진심으로 믿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부디 믿고 싶은 말이 나오길 기대하며 조심스레 부숴본 포춘쿠키를 마주한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에겐 대개 모호한 메시지가 배달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확실한 행운이나 차라리 불행을 기대하지 행복도 절망도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깨달음 같은 것은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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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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