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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y 07. 2019

The record #1_고속도로 로망스

11:11 오늘이 한 칸이 채 안 남은 그런 시간

Andrii Podilnyk / https://unsplash.com/@yirage

정안휴게소를 지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한동안 거의 정차하다시피 움직였다. 모니터 화면 위로 업데이트된 도착 예정시간은 예상보다 한 시간이나 늘어있었다. 더는 잠도 오지 않고 나는 좀 망연한 심정이 되었다. 차창 밖으로 무심히 시선을 돌리자 멀리서 천안시로의 진입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버스는 내가 나고 자란 곳 다음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도시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느리게 굴러가는 바퀴처럼 아득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대학생활도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낯선 도시에서 난생처음 스스로 밥을 지어먹고 대충 채워진 속으로 학교에 가고 피우지도 않은 담배 냄새가 절어 있는 빨래를 돌리고 다시 학교에 가는, 비슷하게 엉성한 나날을 반복하면서 오롯이 나만의 일상을 가꿔야 했던 그때.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서툴렀는지는 굳이 이곳에(어디에서든지) 적을 필요는 없을 테다.


나는 다만 눈을 감고선 버스가 천안을 무사히 지나치기를 바랐다. 여전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의 답답하고 성가신 움직임을 이미 뻐근해진 등과 엉덩이로 체감하며, 희미하게 들려오는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감은 두 눈 너머로 일렁이는 도로 위의 행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로.


... 버스는 이제 달아나듯 맹렬히 달리고 있다. 눈을 떠보니 천안은 아주 멀어진 것 같다. 그렇다고 서울과 퍽 가까워진 것 같지도 않다. 비슷하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어떤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 밤이다.


"It’s 11:11오늘이 한 칸이 채 안 남은 그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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