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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y 07. 2019

The record #2_괜찮은 하루

2019 전주국제영화제 with <다행(多行)이네요(Own Way)>

Annie Spratt / https://unsplash.com/@anniespratt

어제는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2019 JIFF는 나의 첫 영화제 관람이었다. 수년 만에 전주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이십 대 초반에는 좋아하는 이들을 데리고 거의 매년 오던 도시였다. 밤낮으로 술에 취해 혹은 흥에 겨워 영화의 거리를 걸었으면서도 정작 그 핵심 콘텐츠는 한 번도 제대로 즐겨본 적 없다는 게 새삼 부끄러워졌다. 영알못인 내가 덜컥 영화제로 향한 것은 올 초부터 일요글방을 참여하면서 알게 된 (김)송미 감독님의 장편 다큐멘터리 <다행(多行)이네요>가 한국경쟁 부문에 올랐기 때문!


작품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목포에 위치한 '팝업 셰어 하우스' <괜찮아 마을>에서 6주간 30명의 입주민들이 지낸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라고 할까. *'괜찮아 마을'이 무엇인지, 입주민은 무슨 소리며, 무엇보다 어떻게 일상에 6주씩이나 균열을 내면서도 '괜찮아 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괜찮아 마을 홈페이지를 통해 더 알아보거나 아니면 언젠가 당신이 송미 감독님의 <다행(多行)이네요>를 관람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송미 감독님은 2년 전 체코에 머무르며 '영상 에세이'로 이미 유튜브 채널을 살뜰하게도 채워온 바 있다. 채소처럼 싱싱한 그녀의 목소리와 소담한 꽃밭 같은 영상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착해진 기분이 들었더랬다. 그러나 길어야 5분, 평균 3분 남짓한 영상 에세이로 그녀의 일상과 시선을 엿본 것과 달리 이번 영화제에 선보인 작품은 2시간에 달하는 장편 다큐멘터리로, 그녀가 실로 영상을 완성하기 위해 쏟은 시간도 영상에 등장한 인물도 모두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관람에 앞서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그녀가 목포에서 보낸 시간도, 괜찮아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GV에서 밝힌 것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괜찮아 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아주 생경한 뉘앙스가 퍽 불편하게 들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괜찮다고? 지금 난 괜찮지 않은데? 어떻게 여기서 괜찮아질 수가 있지? ... 감히 말하자면, '괜찮아 마을'은 나처럼 배배꼬인(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힘겹게 걸음한 곳이 되겠다.


이야기는 물론 아주 감동적이다. 하지만 마을을 찾은 모두가 그동안 저마다의 사정으로 얼마나 힘들었고, 힘든 만큼 어떤 변화를 이뤄냈으며, 또 그곳이 얼마나 따뜻한 곳이었는지, 그로 인해 서로에게 어떤 마음을 내주었는지는 하나하나 말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을 테다. 그러니 이렇게 감상을 대신보면 어떨까.


나는 평소 상투적인 언어로 건네는 위로와 또 그런 순간에 자리한 온도를 못 견디는 편인데,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송미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주 오랜만에 깨달은 것 같다. 언제부턴가 못난 마음이 상투적으로 자리한 내 일상을 아주 보편적인 눈빛으로 보듬어준 이야기였다고, 실은 내게도 그것이 필요했다고 인정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최근에 읽었던 고수리 작가님의 #우리는이렇게사랑하고야만다 처럼, 곁에 두고선 짧은 봄방학을 다녀오고 싶은 이야기가 <다행(多行)이네요(Own Way)>에 있었다. 사실 중의적인 제목만 몇 초 곱씹어도 저 안에 담긴 사랑과 존중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것이 어떤 영상으로, 사람들로 구현되었을 때의 감동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뿐.


다큐멘터리였음에도, 지난날 영상에세이를 제작하면서 다져진 감독님 특유의 스타일이 잘 녹아들어 있는 덕분에 꼭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비디오북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꼭 '잘 읽었습니다', 라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내 생각에, 보는 것과 읽는 것의 무게는 확실히 다른데-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상대를 깊이 읽을 줄도 아는 것 같다. 송미 감독님은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이제 막 그를 알아가고 있는 시간에 믿고 싶은 짐작을 더해본다.


고생한 송미 감독님에게는 다가오는 일요일에 (이미 많이 받아서 배가 부를) 근사한 칭찬과 박수를 건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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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구나. 내가 그들의 그림자와 함께 걸어도 될까 싶을 만큼 멋진 요즘이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中 <다행(多行)이네요(Own Way> 작품 소개]


OVERVIEW

현재의 삶이 어딘가 괜찮지 않은 보통의 청년들이 목포, ‘괜찮아 마을’이라는 실험적인 공동체에 6주간 머물며 그 마을 안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체험하고 배워간다. 과연 그들은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REVIEW

기성세대가 안내하거나 강제하는 삶의 형태에 적응하는 게 불안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각자의 방식으로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목포에 실험적으로 차린 ‘괜찮아 마을’이라는 공동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다. 그들은 스스로 예민한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예민하며 공동체 외부의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민하다. 이상적이지만 상투적인 공동체의 이상에 기초한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개성으로 인해 내부에서 조금씩 균열될 조짐을 자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끊임없이 노동하며 몸을 쓰는 과정들 속에서 각자의 다른 마음과 행동에 익숙해지려 애쓴다. 다큐멘터리 <다행(多行)이네요>는 섣불리 결과를 예단하지 않는 가운데 공동체 프로젝트 실행과정에서 공존과 조화를 모색하고 서로 다른 이들의 다름을 알아가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침착하게 응시한다. [김영진]


김송미 감독의 영상 에세이 <낯설게 하기> 감상하기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시간이라는 벽 앞에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모아둔 돈 없이 고정지출을 지병처럼 달고 사는 사람에게 출근은 선택 사항이 아니였다."
"낯선 이 거리를 걷는데, 익숙한 안도감이 드는 건 왜였을까?"


/ 걷고 또 걷다 마주친 초등학교에서 신발을 신느라 늦춰진 아이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에게 "빨리 따라가야지"라고 말했다.

남들보다 뛰어가도 모자를 속도에 비해 항상 한 템포,

아니 세 템포는 늦는 나. 어쩌면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따라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결국 이곳에 도망 온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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