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한 권도 팔지 못했고, 다만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었다.
지난 9월 8일은 망원동에 위치한 동네서점, 작업책방 씀의 (계약)1주년이었습니다. 펜데믹 속에서 기어이 책방을 열고, 이렇게나 미래적이고도 희망적인 시공간이 존재하다니 자조하다 보니 1년이 순식간에 가버렸네요. 아무래도 저희는 이런 나날들이 각자의 인생에 짧은 해프닝으로 그치기보다는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저런...) 서점에서의 날들을 기록으로 붙잡아 두면 책방의 수명도 길어질까요? <작업책방 씀>이 ‘씀씀장구’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름의 한가운데에서부터 일기를 하나씩 공개합니다. 도무지 비슷한 구석이라곤 없는 두 작업자의 같은 하루, 다른 일기를 즐거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1년 7월 22일
작업자 2호 혜은의 일기
미화 언니는 간헐적으로나마 꾸준히 『서점일기』를 읽는 나를 보고 책방일지를 쓰라고 주문을 넣었다. 같이 하는 책방인데 나보고만 쓰라고... 막상 일기 쓰기는 언니가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하지만 얼마나 갈까?). 나는 책방일지를 쓰게 되면 언니랑 꼭 같이 쓰고 싶었다. 왜? 같이 하는 책방이니까. 언니가 장난삼아 한 말일지라도 함께 일기를 쓰자고 해서 은근히 기쁜 하루다.
언니의 일기가 쓰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헤어진 애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제 그가 나한테 무슨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해도 주변에 말 하지 않기로 했는데... 결국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이렇게 옛 애인을 조롱하다니.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가사가 떠올라 오랜만에 들었다. *Infinite Flow – Rainbow (feat. 에픽하이 & 넬)
내가 읽은 『서점일기』만큼이나 개판으로 (이 책의 8할은 그날 마주친 손님의 험담이다) 흘러가는 일기다. 언젠가 이 일기가 각국으로 번역되어 낯선 땅에서 우리처럼 책을 팔기로 불우한 선택을 한, 그러나 자신만의 퀘퀘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 책방지기에게 닿는 걸 상상해본다.
하루가 정말 느리게 간다. 책은 한 권도 팔지 못했고, 다만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었다.
오늘 읽은 책: 김기창, 『기후 변화 시대의 사랑』 민음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