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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Apr 03. 2017

[베를린 살이] Fassen Sie Mut!

용기를 가지세요!

다시 또 아침이다. 그리고 첫 번째 주말이 흘러간다. 남은 돈을 셈하는 것보다 8주 동안의 베를린 살이 중 벌써 1주가 흘렀다는 사실이 놀랍다. '겨우'가 아닌 '벌써'라고 말하는 나 자신에 한번 더 놀라고 이렇게 주 단위로 시간을 새다 보면 모든 게 금방이겠구나,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은 시간을 얕보지 말아야지 라는 다짐도 했다. 확실히 시간은 덧없다. 하지만 '덧없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러므로 경외해야 할 대상임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내 삶이 무섭다고 느끼고 있다.




창문 안의 꽃과 창문 밖의 꽃나무에게 차례로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했다. 동네 워밍업은 이제 끝,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베를린 중심부로 나가는 일정이 시작된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282번을 타고 5 정거장만 가면 시내로 나가는 가장 빠른 환승지, 라트하우스 스테글리츠(Rathaus Steglitz)역이 나온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15분 남짓한 시간을 달리면 오늘의 목적지. 포츠담 광장,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에 도착한다.


포츠담 광장은 독일 베를린 교통의 주요 교차지점이자 상업 및 문화 복합지구로써, 독일의 광화문 같은 곳이랄까? 대규모 쇼핑몰인 몰 오브 베를린(Mall of Berlin)과 소니 센터가 포츠담 광장 내에 있는 주요 관광지이다. 나는 이곳에서 (아주) 살짝 벗어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걸어갔다 왔다.


확실히 광장에 오니 가슴이 확 트인다. 나라를 불문한 느낌이지 싶다. 광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렇다. 그리고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풍경. 일요일인 오늘, 마라톤이 한창이었다. 덩달아 건강한 기운을 받는 느낌. *사진에 함정 있음


마라토너들을 향한 응원을 마치고 오늘도 어김없이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자신을 성악가라고 소개한 그 여성은 선뜻 포츠담 광장의 메인로드를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대한민국을 조수미로 기억하고 있었다. 각자의 수도를 소개하면서 나는 '세울'을 '서울'이라 정정해주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는 필하모닉으로 오케스트라를 감상하기 위해 떠나면서 이곳을 잊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이다.


소니센터 1층에 위치한 Ki-Nova라는 카페에서 BBQ 햄버거와 디톡스 스무디를 먹었다. 수제버거의 핵심은 늘 패티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보니 번이 수제버거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 같다.


달고 기름진데 느끼하지 않은 어메이징한 식사를 마치고 센터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앞서 만난 성악가의 추천으로 필름 하우스(Film Museum)를 제일 먼저 들렀다. 아직 박물관 티켓 할인권인 웰컴카드나 뮤지엄 패스권을 사지 않았지만 또 언제 여길 다시 올까 싶어 (또 올 거다) 7유로를 내고 티켓을 끊었다. 저렴하기도 했지만, 실로 7유로가 아깝지 않은 전시였다. 독일 아티스트들의 할리우드 입성기를 그야말로 영화처럼 풀어놓았는데, 내게는 이 전시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영화 같았다. 이곳에 온다면 꼭 관람해볼 것을 권한다. 건물 1층에 위치한 박물관과 연계된 기념품숍에도 꽤 근사한 물건들이 많다.




아쉽게도 몰 오브 베를린은 휴무였다. 베를린은 일요일에 거의 모든 상점이 휴무인 듯하다. 그래도 푸드코트의 일부 식당은 문을 연 덕분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고요한 쇼핑몰을 구경할 수 있었다. 깨끗한 화장실까지도. 좀 감정이 과잉된 것 같지만 인적이 없는 쇼핑몰을 거의 홀로 거닐고 있자니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떤 여행에서든 쇼핑에 큰 목적이 있것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아디다스와 플레이모빌 때문에라도 이곳에 다시 올 것 같은데, 그때는 오늘의 이 정적이 그리워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에도 있고, 포츠담 광장에도 있고, 아마 다른 지역의 베를린에도 있을 프랜차이즈 카페 CARAS Gourmet. 여기가 얼마나 착한 곳이냐면- 보이스톡마저 잘 터지는 프리 와이파이에 220V 노트북 자리와 셀카가 잘 나오는 깨끗한 화장실, 그리고 커피 메뉴에 아이스가 있는 카페이다. 물론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가장 베를린다운 맥주, 베를리너 필스너를 마시며 한국에서는 쉬이 누릴 수 없는 광합성을 즐겼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던지라, 저녁은 간단히 집에서 해결할 요량이었다. 라트하우스 스테글리츠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는 데 30분이나 후에 도착한다는 알람이 보인다. 두 달을 투자한 게으른 여행객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기다림.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그저 환승지였을 뿐인 역 주변을 심드렁하게 둘러보는데 세상에, 스시 카페가 보이는 게 아닌가.


나는 단숨에 내부와 테라스의 청결도 및 다른 손님들의 머릿수 등을 확인하고, 메뉴판을 보면서 이 가격에 나올 수 있는 최상 혹은 최저의 퀄리티를 점쳐봤다. 하지만 이미 이만큼 시간을 들였다는 건 벌써 이 가게에 대한 신뢰도가 반은 넘었다는 거다.


결국 6.50유로를 내고 적당한 허기를 채우기 좋은 메뉴를 시켰다. 두부가 들어있는 미소 장국을 한술 떠먹는데, 이건 도저히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맛이었다. 분명히 (한국을 떠난 지 4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국과 쌀을 그리워한 내 미각 때문이리라. 장국이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준결승전 정도에 올라갔을 법한 맛이라 표현하고 싶을 정도였다면, 스시는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부드럽고 맛있었지만, 역시 6유로의 스시였다. 물론 6유로로 베를린 외곽에서 이 정도의 스시를 맛볼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혹시나 한국의 초밥 뷔페처럼 마른 쌀이 씹힐까 걱정했는데, 그와 비교한다면 단연 스시 클럽의 승리다. 참, 여기도 프랜차이즈란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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