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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Apr 04. 2017

[베를린 살이] die Kindlein

어린 아이들

오늘도 라트하우스 스테글리츠(Rathaus Steglitz)를 경유하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새삼 숙소를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로부터 500~700m 내외에 있는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역은 베를린 중심부로 나가는 데에 어느 곳이든 30분이 넘지 않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틀 연속 브란덴부르크 문을 스치듯 지나갔다. 오늘은 '72시간 동안 베를린 내 박물관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뮤지엄 패스권>을 사기 위해 들렀다. (몇몇 판매지 중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브란덴부르크 문 옆 인포메이션을 선택했다.)

베를린 관광객들은 대개 '베를린 박물관 및 주요 관광지 입장 할인이 제공되면서 교통권(프리패스)까지 포함된' <웰컴카드>를 구매하곤 하는데, 나처럼 베를린에 중장기로 머무는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및 트램을 살 때마다 표를 구매하면 상당히 불편하므로 아예 한 달 단위로 정기권을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웰컴카드 홍보 브로셔와 내가 구매한 뮤지엄패스권

따라서 이미 교통권이 있는 나 같은 관광객들에게는 웰컴카드 구매는 이중으로 돈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박물관 관람에 관심이 있으면서 베를린에 한 달 이상 머물 예정인 이들은 뮤지엄 패스권을 권한다.

물론 단기 여행자들도 구매해서 손해 볼 건 없다. 웰컴카드는 교통권이 무료라는 메리트를 빼면 단순 할인권 개념이 크고, 뮤지엄 패스권은 말 그래도 일부 뮤지엄을 제외하면 자유롭게 베를린 내 뮤지엄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웰컴카드는 48시간/ 72시간 단위로 시간을 지정할 수 있는데, 72시간권 구매 시 베를린 뮤지엄 섬에 속한 5개의 박물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옵션을 추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기 여행자들에게는 베스트 초이스이기도 하고. 의무적으로라도 박물관을 관람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합리적인 선택일 듯.  





3월 29일부터 4월 28일까지 사용이 가능한 베를린 교통 정기권, 모나츠카르텐

여기서 잠깐 내가 구매한 교통 정기권에 대해 설명해본다. 관광객들은 베를린 지하철에서 (U・S반, 버스, 트램 무제한 사용이 가능한) 정기권뿐만 아니라 각종 대중교통 탑승 티켓을 발권할 수 있다. 정기권이 필요한 경우 다음의 스텝을 따라오면 된다.


1) 지하철역 혹은 버스 정류장 근처 노란색 매표 기계 첫 화면 오른쪽 국기 표시를 눌러 언어를 영어로 설정하고 구간을 선택하자. *단기 여행자들의 경우 대부분의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데에는 A-B구간이면 충분하다. C구간을 갈 때에는 1회권을 끊으면 된다.


2) 구간을 선택했으면 그다음 화면에서 맨 위 왼쪽에 위치한 Monatskarten(모나츠카르텐)을 누른다. 이때 모나츠카르텐 선택 후 플렉시블 티켓(Flexible monthly)을 선택해야 내가 원하는 개시 날짜 지정이 가능하다. *본인이 아침잠이 많고 교통비용을 절감하고 싶다면, 오전 10시 이후부터 사용 가능한 '10am ticket' 선택할 것! (56유로)


마지막으로, 정기권이 아닌 경우에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역사 내 펀칭 기계에 티켓을 넣어 날짜 스탬프를 반드시 찍어야 불시의 검문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뮤지엄 패스까지 구매했겠다, 시간 (많은) 여행자는 본격적으로 박물관을 가기 전 투어를 시작해본다.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부터 시작해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거리를 지나 홈볼트 대학교(Humboldt University of Berlin)를 찍고,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에 위치한 베를린 대성당(Berliner Dom)에 도착했다.

오늘 베를린은 하루 종일 흐림이다. 비만 내리지 않았을 뿐, 아니 차라리 비가 내렸으면 하는 날씨여서 1시간 남짓했던 산책은 날이 조을 때 다시 밟아볼 예정이다. 운터 덴 린데 거리와 루스트가르텐의 뜻이 각각 '보리수나무 아래'와 '기쁨의 정원'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말이다.


베를린 돔과 그 옆을 흐르는 슈프레 강. 날씨 때문인지 유난히 동독 시절의 베를린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작은 유람선을 타고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견고한 자부심을 느껴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베를린 돔과 슈프레 강을 잇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보이는 레스토랑에 착석했다. 알고 보니 트립어드바이저에 등록돼 있던 Allegretto Gran Caffe. 이곳에서 오늘의 스프인 토마토 스프와 베를린의 대표적인 간식, Berliner curry wurst(커리 부어스트)를 시켰다. 메뉴판에는 Berlin style sausage with homemade curry sauce and french fries라고 소개돼 있다.

커리 부어스트는 밥이랑 함께 비벼 먹고 싶은 맛이었고, 몸을 데워주는 토마토 스프가 정말 일품이었다. 까딱하면 글라스 와인도 시킬 뻔했다. 감자튀김은 거의 3인분 양으로 나왔는데, 케첩은 손도 안 대고 하인즈 마요네즈와 스프에 번갈아 찍어 먹었다. 아마도 베를린에 와서 처음으로 베를리너 다운 식사를 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나서면 보이는 박물관 섬(Museum Island, Museumsinsel)의 이정표. 독일에서 제일 유명한 5개의 박물관을 모아놓은 곳이다. 월요일에도 문을 여는 베를린 신 박물관(Neues Museum)과,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에 우선적으로 방문했다.

신 박물관에서의 단상. 내가 만약 조물주였다면 이 시대의 인간들이 되게 귀엽고 기특했을 것 같다. 신의 시간 속에서는 갓 빚어진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세상을 채워나가고 이윽고 이를 역사라 부르는 모습들을 보면서 말이다.

Eros Carrying Garlands in Pergamon museum




집에 가기 전, 베를린 돔에 다시 들러 티켓(7유로)을 끊고 내부로 입장했다. 나는 모태 불교지만, 오늘처럼 종교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지금까지 그저 살아 있으니 살아왔던 시기가 있었다.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고, 그런 시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죽지 못해 사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오늘도 살아 있으니까 오늘을 나답게, 때론 구차하게, 구차한 게 나다운 건지 헷갈리면서 살아내는 날들의 연속 말이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고 자문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뭐,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지. 빤한 자기합리화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내게 신은 그러라고 있는 존재니까. 그렇게라도 삶의 방향을 찾고 꾸역꾸역 의미를 부여하며 이따금 크고 작은 뿌듯함으로 살아가는 것.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은 이런 존재다. 결코 억울하지도, 비하할 의도도 없다. 그저 죽는 날까지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지 않고 갱신시키는 게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의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n년을 더 살아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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