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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y 04. 2017

[베를린 살이] Egal!

신경쓰지 마!

*이번 주부터는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를 둘러봅니다.


미테(Mitte)에서의 시작이 그러했듯, 오늘도 새로운 지역의 랜드마크 격인 서점을 방문하는 것으로 첫걸음을 뗐다. 오픈 시간보다 10여 분 정도 일찍 도착해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데 문득 내려다본 바닥에 흩뿌려진 무엇(?)들의 색감이 예뻐서 괜히 찍어보았다.

크로이츠베르크의 서점, 모토(Motto)는 U1 Schlesisches Tor역에서 3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슈칼리처슈트라세(..)에 진입해 1분 정도 걷다 보면 요란한 그래피티가 안내하는 거리에서 청순한 연보랏빛 타이포를 발견할 수 있다. 혹시 지나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도 어플과 어지러운 바닥, 벽을 번갈아 확인하다 보면 모토의 심플한 간판은 오히려 쉽게 눈에 띄니까. 삭막한 거리 위, 그래피티만 동동 떠다니는 이곳에 자리 잡은 모토는 조금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간판이 달린 건물 마당을 따라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안쪽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서점이 나타난다. 한 웹진에서 이곳을 '차가운 도시의 보물 창고'라고 표현한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즐거운 기다림 @Skalitzer Strasse 68 / 화~토요일 12:00~20:00


비가 내려서 그런지 서점 특유의 냄새에 약간 젖은 공기의 냄새가 더해져 약간 으슬거리면서도 몽환적인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나는 독일어는 1도 이해하지 못하고 영어도 역시 젬병이라, 순전히 분위기에 취하기 위해 타국의 서점 들르기를 즐긴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오늘의 첫 손님을 체크하는(?) 냥님. 어디 보자... 얘가 뭐라도 살 앤가 아닌가.


이윽고 까만 목폴라를 입은 점원이 오픈을 알렸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들어갔는데, 그의 상의보다 훨씬 까만 고양이가 나를 무심히 반겼다. 고양이 없는 고양이 덕후인 나는 완전히 횡재한 기분!

나를 계속 따라다녔다. 내가 아니라 이 고양이가. 정말로!

캐릭터의 포즈가 귀여웠던 일러스트 책. 통통 튀는 색감도, 크레파스 뭉개지는 질감도 마음에 들었다.


킬리만자로는 역시 조용필 씨가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제일인 줄 압니다만?

내가 더 좋아해♥




*무스타파스 게뮤제 케밥(Mustafas Gemuse Kebap) @Mehringdamm 32


유명하다는 베를린의 케밥을 먹으러 왔다. 베를린에 유독 터키인들이 많은 덕분에 터키식 길거리 음식점도 참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유명한 무스타파스 게뮤제 케밥집을 찾았다. 이래 봬도 공신력 있는 음식점 랭킹들에 빠지지 않고 등극돼 있는 곳이라고. 늘 줄이 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비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던 오후라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갔는데 웬걸, 나는 이곳에 가는 데에 걸린 시간만큼 기다려야 했다.

냄새부터 취향 저격인 케밥. 단돈 3.50유로인데 크기는 이 가격의 두 배 만한 모양새다.


살면서 케밥을 먹어본 게 언제였더라, 초등학생 때인가 중학생 때인가 집 근처 문방구 옆에 난데없이 외국인이 장사를 해 (당시만 해도 동네에서 외국인이 상주한다는 게 상당히 놀라운 때였다) 신기한 마음에 자주 들여다봤는데 알고 보니 '케밥'이라 불리는 것을 파는 집인 거라. 그때 엄마 손을 잡고 가 몇 번 사 먹은 기억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글쎄... 아무튼 어린 날의 기억 속 케밥은 기대만큼 기억할 맛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성인이 되어서 타코처럼 자주 찾게 되는 메뉴도 아니었고. 
그리고 다행히도 생애 첫 정식(?) 케밥이나 다름없는 무스타파스의 케밥은 정말 최고였다! 이런 게 케밥인가? 이걸 케밥이라고 부른다고? 뭔가 더 근사한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 같은 식사였다. 일반 랩과 번(bun) 중에 나는 번을 선택했고, 마침내 또띠아에 말린 익숙한 모양의 케밥 대신 저렇게 적당히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케밥을 손에 들었다. 정말 어메이징했던 맛. 여기는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한 번은 더 오고 싶다. 베를린 여행을 떠나려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맛집!
*사실 내가 막입이기도 하고, 점심은 거의 카페 푸드 위주로 해결하는 터라 여행의 즐거움을 맛에서 찾는 편이 아닌데 (일단 독일 음식들이 대체로 숙연하다. 그렇다고 매일 소시지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혹시라도 내 블로그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얻으시려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이 케밥집은 꼭 가주세요..제발!




간이 테이블에 서서 손이 어는 줄도 모르는 식사를 마치는 동안 비는 더 거세게 내렸다. 언제나처럼 카페에 눌러 앉으려다가 날씨에 지는 기분이 들어 15분 거리에 있는 모리츠플라츠 역으로 이동했다. 아우프바우 하우스(Aufbau Haus)라는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은 복합문화공간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전쟁 후 쇠퇴되었던 이곳에 빌딩을 세우고 창작자들을 불러들임으로써 다시금 지역의 부흥을 일으켜낸 아주 상징적인 공간이다.
나는 서점을 건너뛰고 3층 규모의 다목적 대형 상점인 '플라네트 모둘로어(Planet Modulor)'를 집중적으로 둘러보았다. 마치 며칠 전 방문했던 두스만 서점처럼 우리나라 교보문고의 핫트랙스 쯤으로 여겼던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사진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과연 그 옛날 작은 건축자재 상점에서 시작한 기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원자재, 종이, 텍스타일, 툴, 가구, 인테리어 소품까지 공예에서 건축에 이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위한 재료들을 공급하고 있으며 (중략) DIY 식의 공예나 제작을 즐기는 일반 구매자에게도 성지와 같은 곳이다」 -매거진 B 베를린 편

평소에도 아무런 목적 없이 서울까지 나가 (경기도민입니다) 대형 문구점이나 서점을 들리는 나에겐 여기서 머물렀던 시간이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마스킹 테이프의 진화. 달님과 우주 마스킹 테이프, 그리고 포인트 벽지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 같은 도시 전경 테이프는 잘못 했음 한가득 사 올 뻔했다. 하하

느낌 있는 펜 샘플 디피 / 추억의 SAKURA GLITTER 펜!! 초등학생 때에는 용돈이 생기면 이거 사기 바빴다. (아마 중학생 때까지도...)

사용자의 색깔과 상관없이 예쁜 것을 만들어 내는 너희들. 하등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이 더 오래 마음을 채우는 법.

다시 봐도 그저 이케아st일 뿐인데, 작은 감탄을 했던 저는 뒤늦게 베를린 병을 앓고 있습니다. 남은 한 달 동안 깨지 말고 잘 취해 보자.

우프바우 하우스 1층 서점 뒤편에 자리한 카페 Rock-Paper. 처음 맛본 누가(Nougat) 크루아상 정말 1등 디저트다. 명함이 아름다워 노트에 붙여놓았다.

베를린 날씨에 이어서 아예 내가 지금 이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적응되었는지, 크로이츠베르크는 미테보다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민한 건지, 둔한 건지. 새로운 환경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러고 보면 많은 것들이 (인간관계 역시도) 늘 적응이 아니라, 인정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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