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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y 02. 2017

[베를린 살이] Wirklich?

그래요?

*바야흐로 5월이다. 5월은 왠지 안녕? 이라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야 할 것만 같다.


벌써 5월이다. 몰랐던 것처럼 말하지 마. 내내 이 봄을 의식하고 있었으면서. 실로 오랜만에 일하지 않는 신분으로 노동절을 맞았다. 그것도 해외에서. 아침부터 사치스러운 기분으로 오늘을 인지했다. 오전에는 신호가 약한 이곳의 와이파이 때문에 애인과 통화를 하다 서로 빈정이 상해버렸다. 우리의 입씨름은 그동안 자신이 더 많이 참아 왔다는 확신이 전제에 깔릴 때 증폭된다. 당연히 상대에게 더 많은 이해를 요구한다. 나는 그 생각에 아직도 변함이 없는데, 너는 어떠할지. 야, 나는 지금 여행 중이잖아. 나는 나에게 맞추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수십 번씩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한다고 우리 집 와이파이처럼.

이너 피스가 시급했던 아침, 공원으로 달려왔다. 마냥 절박했을 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풍경이 이미 진행 중이었다.

미테(Mitte)지구의 한 구역인 Rosenthaler Platz역에 도착했다. 5월 1일인 오늘. 가고 싶었던 북카페는 노동절이니 당연히 문을 닫았지만, 공원은 늘 그렇듯 건강하게도- 고단을 모르고 연중무휴이니까 카페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는 Weinbergsweg을 찾았다. 날씨 어플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머무는 동안만은 영화 같은 풍경이 상영되었다. 요즘 베를린 하늘에게 자주 고마워한다. 나만 빼고 모두가 아름다워 보이는, 유럽의 봄은 기적 같은 느낌이구나.

연못에 비친 내 모습. 정말이지 '빼꼼'한 마음. 문득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 생각났다. 늘 맑은 마음으로 그곳에 있을 그의 노래.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 가리

공원의 얕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바라본 전경

아! 그러고 보니 나 다이소에서 2천 원 주고 꽃무늬 돗자리 사 왔는데! 참, 캐리어 안에 있지(...)

*빅셔너리와 매거진 B가 없었으면 멍청이 여행자의 두 달은 더욱 허술해졌겠지. 조금 더 수고해줘.




Weinbergsweg 근처 프리 와이파이를 찾아 들어온 이름 모를 카페.

베를린 카페들의 인심은 참 후하다. 커피는 그렇다 쳐도, 이제 한국 가서 어떻게 돈 주고 케이크를 사 먹어야 하나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런데 1시 반 즈음 들어온 카페는 3시에 문을 닫았다. 커피와 케이크가 조금씩 남아 있었지만 내 남은 우울의 몫으로 남겨 두고 왔다. 너, 여기서 그거 다 먹어. 따라오지 마.

*쇼윈도에 왜곡되어 비치는 내 모습이(만) 좋은 요즘.

네 표정=내 표정
오늘의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

집 앞 지하철역에서 2.75유로짜리 샐러드 파스타를 샀다. 베를린에서는 식당에 착석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3유로가 채 안 되는 돈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조금 더 운이 좋으면 아늑한 카페에서도 3유로 남짓한 가격의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고. 애써 궁상떨지 않아도 그럭저럭 지갑을 열 때 얼굴색을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이 정도 물가인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밥을 먹을 때 뉴욕 대신 베를린을 선택하길 잘했지 안도할 때가 있다. 덕분에 카페도 더 자주 가고, 가끔 손에 무언가 쥐고 돌아오는 저녁을 마주하니까. 엄마는 아직도 내가 베를린에서 2만 원 이상의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장 놀라워한다. 물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에서는 꼭 먹기 위해 사는 애처럼 보였잖아요.

사진을 찍고 보니 프레임에 희미하게 담겨 있는 너. 늘 내 시선에, 혹은 귓가에 닿아 있(으려 하)는 너. 아침의 한숨에 지금은 웃음이 섞여 나오니 이만하면 성공적인 이너 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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