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은 May 07. 2017

[베를린 살이] das Andenken

1. 추억 2. 기념품

나는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유를 요거트로 헷갈릴 때도 있지만.

마침내 베를린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의 숙소 결제를 마쳤다. 이로써 두 달 동안 총 네 번의 숙소 이동을 겪게 됐다. 오늘 아침에는 다가오는 여름을 위해 새로운 여행지로 향하는 비행기 예약도 확정됐다. 여행지에서 또 다른 여행을 욕심내 카드번호를 입력하는 건 또 처음이다. 하루하루 통장 잔고는 0으로 수렴해가지만, 내 인생에 이 정도 짓궂은 장난은 다신 없을 것을 알기에 일단은 눈감아주기로 한다. 
월급 날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보험료와 공과금, 카드값 계산을 하던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내 형편을 종종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오히려 여행을 하면서 내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니, 외면하려고 해도 드러나게 돼있다. 그런 와중에도 전에 없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다니. 여행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구나.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에서 사진전을 보았다. 사진, 예술, 대로. *사진전의 사진은 당연하게도 사진 촬영이 불가했다. 하지만 무료로 배포되는 브로셔 활용을 잘 하면 이렇게 마음에 들었던 사진을 오래 기억할 수 있지. 베를린에서 물풀과 마스킹 테이프를 산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베를린이 내게 던진 메시지들. (아래의 문구와 상당히 상충된다)

내 대답은, "그러게나 말이야."




열기구를 따라 무작정 걸으니 금세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근처까지 도달했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베를린 장벽에 있던 검문소다. 이곳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이게 전부다. '검문소'가 존재했다는 것부터가 동독과 서독의 사람들은 왕래가 가능했다는 것인데 왜 나는 과거의 독일도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완벽히 단절된 분단국가라고 생각해왔던 걸까. 호스트의 친구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면서 내가 체크포인트 찰리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우리나라는 너희의 과거와 같아"라고 말했을 때 왜 그가 "아마 아닐 거야"라고 말했는지 알겠다.

No more war

체크포인트 찰리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이곳은 1961년부터 1990년까지 연합군과 외국인, 외교관, 여행객들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었던 유일한 관문이었다. 검문소의 주요 업무는 서독의 연합군이 동독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록하고, 동독에서의 체류지를 조사하는 것인데 외국인 여행객 역시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동독에서 서독 쪽으로 나올 때는 검문을 받지 않았다고. 이 점이 참 흥미로웠다. 검문소는 내가 태어난 해,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철거되었다.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사실 체크포인트 찰리는 가장 후순위로 둔 관광지인데 막상 눈앞에 검문소와 이 짧은 거리의 풍경을 마주하고 나니 우습게도 아, 여기야말로 베를린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이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내가 받은 느낌은 상당히 모호한데, 굳이 표현해보자면 '이곳에 부유하고 있는 어떤 것도 서로 섞이지 않은 채 그저 흘러가고 있구나...' 정도? 짧고 좁은 거리 위 모든 이들이 부산스러워 보였다. 이건 필히 내 감정의 과잉 때문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관광지에서도 느끼지 못한 높은 밀도와 역동적인 풍경에 나는 잠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생각한 체크포인트 찰리는 이렇지 않았는데. 설마 나는 60년대의 베를린을 기대한 걸까?

체크포인트 찰리 바로 뒤편의 거리

베를린 장벽의 조각을 활용한 기념품보다도 나는 역시 베를린 곰이 좋더라. 여행 막바지에 꼭 사야지.




여행객의 친구, 맥도날드. 어린이날이니까 해피밀은 아니라도 맥도날드 세트를 먹어줘야지. 마침 풍선을 배포하고 있었는데, 동행객이 있었다면 나는 분명 저걸 들고 이 거리를 조금 더 걸었을 거다.

*자동 주문기로 주문을 하고선, 굳이 현금결제를 택한 나는야 셀프 피곤러


베를린 맥도날드에는 무엇이 특별한고- 살펴본 결과, McRib 세트를 선택했다. 감자튀김에 찍어 먹을 소스로는 사워크림을, 그리고 콜라 대신 내가 사랑하는 탄산 사과주스! 조합이 꼭 어설픈 아웃백에 온 것 같고 좋다.

나는 야매 베를리너니까, 테라스에 앉아 체크포인트 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겼다. 굿바이 어린이날!




체크포인트 찰리는 포츠다머 플라츠역 근처라 '몰 오브 베를린'까지 가볍게 걸어왔다. 언젠가 블로그 이웃이 귀띔해 준 몰 오브 베를린 1층의 젤라또 생각이 나서. 이왕이면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맛을 고르려고 보는데, 아니 '초코 마카롱'이나 '바닐라 마카롱'도 아니고, 그냥 '마카롱'이라고 적힌 맛이 있는 게 아닌가. 그 당당한 자신감에 나는 기대반 걱정반으로 마카롱 아이스크림을 골랐고- 세상에, 다행히도(?) 정말 '마카롱' 맛이 났다. 다른 어떤 맛도 아닌 그냥 마.카.롱! 아 이건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정말 먹어봐야 아는 맛. 마카롱 아이스크림을 마카롱 아이스크림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사실 오늘의 내 마지막 기분은 이게 아닌데, 어린이날이니까 봐줬다 내가.

작가의 이전글 [베를린 살이] Zu Teuer & Zu Billi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