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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y 07. 2017

[베를린 살이] 동네 카페에서의 단상

IF YOU CAN

나는 마음이 좋을 때는 좀처럼 글을 쓰지 못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내게 '좋은 날' 쓰는 글이란 대개 소재에 대한 감상에 불과하다. 마음에 구름이 낄 때 비로소 글을 쓸 원동력을 얻는다. 이 잔인한 동기부여 같으니라고... 누군가 이 경우에는 그냥 넋두리 아냐?!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뭐, 결과물에 따라서는 그곳도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아무튼, 나쁜 상상이나마 그것을 바탕으로 내일을, 모레를, 어느 때의 누군가를 그려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린이날이었던 그날 오후는 나로 하여금 나쁜 사색에 잠기게 했다.


-

시간을 갖자는 말을 들었다.
누구에게나 생각할 시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네가 생각할 시간을 내 시간과 나눠 쓰자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기서 내 의사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미 내 생애 할당된 모든 생각의 시간들이 초과되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위험하다. 위험한 말, 위험한 너... 위험한 너는 누가 만들었나. 너의 부모님? 아닐 거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사랑하니까 너는 나에게로 와 내 사랑을 먹고 조금씩 위험해졌다. 그러니 나는 네 말에 수긍하는 수밖에. 그렇게 잠시 지옥에 다녀오는 수밖에. '다녀올' 수 있다면 말이다. 

너는 나로 인해 천국과 지옥을 자주 여행할까? 라는 억울하다는 듯한 질문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네 눈에 나는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보일지도 모르니까. 오만한 사랑을 하는 죄로 오늘은 내가 잠시 그곳에 다녀올게. 그리고 실토하는 수밖에. 너무 무서웠다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즈음 너는 거의 울상인 얼굴로 덧붙인다.
내 말은,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 동안만이라는 뜻이었어.

그제야 나는 웃는다. 괜찮은 여행이 될 뻔했는데- 라고 감히 생각한다.
랜덤으로 돌아오는 형벌의 시간을 우리는 짐짓 모른 척, 다시 웃고 떠들고 서로에게 기댄다.
인간은 참 버라이어티하게 간사하다.

IF YOU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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