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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y 13. 2017

[스치듯 드레스덴] 여행은 정말 살아보는 걸까?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찾아서

프리드리히샤인을 떠난다. 아니, 베를린을 '잠시' 떠난다. 이 도시가 내가 다시 '돌아올', '돌아와야 하는' 곳이 되었다니, 놀랍다. 그리고 저 짐을 들고 한 번 더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 아득해진다. 베를린에서 드레스덴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 일산에서 본가인 당진으로 내려가는 시간과 비슷하다. 엄마는 이 얘기를 듣고는, 오늘 그대로 내가 집에 오는 거였으면 좋겠다 말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이 말을 삼켰다. 엄마, 여전히 염려스러운 마음은 알겠지만 제발 이 여정의 어떤 순간에도 초 치지 말아줘. 으이구 못났다... *물론 저도 캐리어가 하나 초과되는 여행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저 짐을 끌고서도 밥을 먹고, 사진을 찍습니다. 동네 카페에서의 마지막 식사와 참 맛있었던 태국 음식점은 기억하고 싶으니까요.


크루아상과 초코칩 쿠키, 그리고 얼그레이 티로 브런치를 대신했다. 커피 대신 차로 시작하는 아침은 뭔가 더 포근한 기분이 들어서 좋다. 커피가 간밤의 기운을 조금은 날카롭게, 화들짝 깨워준다면 차는 뭐랄까, 약간 부드럽게 등을 쓸어내려 주는 기분이다. 플릭스 버스(고속버스) 탑승을 앞두고 조금은 떨리지만 가슴 한구석에 애써 설렘을 주입해본다.
부디 남은 여행은 긴장은 덜고, 낭만은 더해지길 바라본다. 드레스덴과 프라하 모두 그것들을 욕심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니까. 우산보다 돗자리를 습관처럼 챙기는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참, 프리드리히샤인을 떠나기 전, 호스트 헬가의 중국인 친구가 반려견(!)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세계여행(!!!)을 마친 뒤 펴낸 여행기를 훑어봤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의 사진을 찍어 남자친구에게 해석을 부탁했다. 그의 돌아온 대답이 꼭 나의 남은 날들에게 하는 말 같아 기억해두고 싶다.


You already know you gonna lose before you try to challenge new thing. But you choose keep going. No matter how hard, just keep going.




노란 자동차, 빼곡한 나뭇잎, 짙은 그림자
드레스덴에서도 에어비앤비 플랫폼을 이용했습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 했으니, 살아보려고 또 떠나왔습니다.

베를린을 떠나면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의 캐치프레이즈가 그저 일상이 지겨워진 우리를 떠나게 하기 위한 유혹의 메시지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실로 '살아보는 여행'은 욕심인 것 같다. 여행이 일상의 탈을 쓰는 순간, 순도 100% 일상에 따라붙는 불순물들도 감수해야 한다는 걸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심지어 이건 완벽한 일상도 아니다. 왜냐하면 일이 없는 일상은 어느 순간부터 엄청난 무료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눈 뜨면 먹고 보고 걷고, 또 때가 되면 먹고, 종종 쇼핑을 하고... 입을 열고 지갑을 열수록 쾌락의 수치는 오히려 떨어지기만 한다. 무의미한 흥분이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 생각을 하면 금세 아찔해지지만, 적어도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여행은 살아보는 게 아니라, 그저 여행 그 자체로 남는 편히 훨씬 아름다운 것 같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처럼. 그래서 나는 드레스덴에서의 열흘을 베를린에서의 한 달과는 확연히 다른, 여행다운 여행으로 만들고 싶다.


*마침 나의 세 번째 숙소는 꼭 이 도시처럼 컬러풀합니다. 아주 마음에 들어요. 거의 독채 수준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완벽!




무려 8시가 다 되어가던 드레스덴의 저녁 하늘. 장을 한가득 봐놓고선, 집 가는 버스를 놓쳤는데도 안심이다. 게다가 머리 위의 저런 구름이 떠 있다면 더더욱.

장 봤다고 꼭 그날부터 요리하란 법 있나요? 집에서 1분 거리(진심)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길래 들러봤다. 막입이지만 파스타만큼은 나름 진지하게 먹는 터라, 거의 기대 않고 있었는데 웬걸. 엄청 훌륭했다.

식사를 마칠 즈음 목이 말라 맥주를 한잔 더 시켰더니, 계산할 때 서비스로 이태리 라임주를 주더라. 주당인 거 티 났나. 관광을 앞두고 내일 꼭 타봐야 할 트램 번호도 알려주고, 드레스덴의 첫인상이 좋다. 그나저나 저 라임주 다음엔 제대로 시켜봐야지. 엄청 맛있어!

뒷마당에 들꽃이 수북이 피어 있는 예쁜 집과, 더 예쁜 우리 집 담장.


베를린에서 한 달 가까이 센치했으니까, 이제 낭만'만' 즐겨보려 한다. 며칠 전 밤처럼 또 대학생 때 읽었던 책이 떠오르네. 정이현이 쓴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광화문 교보문고 책장에 기대어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물론 그녀가 쓴 단편들의 색깔과 무관하게 나는 내 낭만과 사랑이 자라날 수 있는 사회를 찾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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