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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y 14. 2017

[스치듯 드레스덴] 바쁜 여행자는 사색할 시간이 없다

중앙역과 츠빙거궁전 앞에서 눈만 끔뻑거린 하루

오늘도 외로운 나의 오감을 부지런히 채워준 것들. 나를 스치거나 내게 머무는 모든 순간이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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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목에 걸고 여행자룩을 완성했지만, 숙소의 와이파이가 사진 용량을 따라가지 못해 오늘도 휴대폰 사진만 잔뜩 업로드해버렸다.


베를린은 몰라도 드레스덴에서는 꼭 카메라로 사진 찍으세요. 두 번 찍으세요. (편애) 그나저나 이너 없이 얇은 셔츠만 달랑 입어도 저녁까지 버틸 수 있는 날씨라니. 드레스덴은 정녕 무릉도원인가요? 최소 독일의 유토피아... 아직 중앙역 밖에 둘러보지 않았습니다만..?




중앙역 맞은편에 앉아 아이스크림 먹기에 집중하고 있던 청년. 나도 무지개를 보며 무지개를 닮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햇살 가득한 중앙역의 모든 것들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던 오후. 평범한 분수 하나에 마음이 해방될 일이라니.
분수대 언니도, 폼 잡고 서 있던 당신도 안녕




9번 트램을 타고 츠빙거 궁전이 있는 Theaterplatz 거리에 도착. 궁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말을 괴롭히는 마차 싫어요. 타지 말아주세요.

생각보다 짧은 길이의 타일(!) 벽화였던, 군주의 행렬. 물론 위엄이 길이에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와 보니, 실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대했던 유럽을 드레스덴에서 만났다. 추억 속 예대 굴다리 같은 저곳을 지나면-

그 유명한 엘베강이 나옵니다.

한강에서나 엘베강에서나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맥주를 마시는 것. 홀로 여행 중인 나에게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목이 마르면 물을 사는 대신 그냥 목 축이는 김에 다리도 쉬게 할 겸 카페에 들어가 맥주를 주문하게 된다. 오늘도 엘베강을 핑계로 아까부터 말라 있던 목에 단비를 내리게 했다.




츠빙거 궁전을 휴대폰 카메라 사진으로 올려야 한다니. 분하다 숙소 와이파이...
실물이 오억만 배쯤은 더 예쁘고,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이것보다 1000배쯤 예쁘다.

츠빙거 궁전만큼은 블로그에 고화질로 옮기고 싶었는데, 결국 또 인스타그램 붙여넣기를 해버렸다.

사람들은 군데군데 민들레 홀씨가 남아 있는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아 입술로 바람을 부는 포즈를 취했고 나는 쓸쓸히 궁전 뒤편을 돌아봤다.




오늘도 외로운 나의 오감을 부지런히 채워준 것들. 나를 스치거나 내게 머무는 모든 순간이 향기로웠다.


참, 츠빙거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 분위기가 참 좋다. 치즈케이크와 커피세트가 5.30유로 밖에 안 하는데 맛은 평균 이상이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유머가 있다. 이어폰 없이 뮤직비디오를 보는 손님 근처를 서빙하다 가볍게 몸을 흔든다거나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를 마치려는 나를 따라 Bye~라고 말하고 스윽 지나가는 직원들 덕분에 조금 더 웃었다. 식사 메뉴도 성의있어 보인다. 조만간 연어 정식을 먹으러 다시 가야지.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하는 1인)

물론 드레스덴에도 먹구름은 밀려옵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중앙역 REWE와 dm에 살 것들이 있어 이동하자마자 거세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보다 2시간이나 빨리 내리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았다. 하필 오늘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나를 향한 원망도 잠시, 저녁으로 먹을 샐러드와 빵을 사야 한다는 의지에 토너와 치약을 새로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더해지자 못할 게 없었다. (얼마 동안의 뇌우는 조금 무서웠다) 
마침내 비닐백 두 장을 사서 에코백을 감싸고, 스카프는 히잡처럼 둘러쓴 채 중앙역을 벗어나는데 여기서도 악착같이 살아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또 헛웃음이 나왔다. 새로 산 치약은 기분 좋게 상쾌하고, 토너는 평소 선호하던 것에 비해 조금 독한듯하지만 이 정도면 쓸만하다. 드레스덴에서 보낸 하루는 베를린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분주했다. 작은 도시라고, 많은 이들이 당일치기로 휘리릭 둘러보고 떠난다는 도시라고 해서 얕잡아(?) 봤는데 오산이었다. 
동선이 짧은 것과는 별개로 눈과 손과 귀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3일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배부른 사색에 잠길 시간이 찾아오겠지만, 오늘은 카페에 앉아도 몇 분 전 눈앞에 있던 광경을 되새김질하느라 마음이 콩콩거리는 바람에 공책은 펼치지도 못했다. 내일부터 필기구는 두고 다녀도 될 것 같다. 그래, 이렇게 정신을 홀딱 빼앗기는 것이야말로 진짜 여행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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