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은 May 20. 2017

[스치듯 드레스덴] 요 며칠 얻은 몇 가지의 새로움

What a wild wild world that we live in

*5/16 am 프라하행 플릭스 버스 티켓과 소액 of 소액 코루나


한국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외로움은, 그 때문에 이곳의 나에겐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감정의 형태였다. 하지만 사람은 쉬이 지치고, 무형의 감정은 피곤을 모르고 찾아왔다. 나는 몇 번씩 넉다운되면서 외로움을 공격적으로 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외로움이 드리워질 때마다 내가 날이 서 있는 한, 끝없는 '싸움'으로 남을 감정소모는 제발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애써 외로움과 한 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외로움이 나를 응시할 때 가끔은 나도 말간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서로의 눈동자를 악의 없이 마주할 수 있을 만큼만. 딱 그 정도의 거리에서만.

그리고 이 같은 연습이 꽤 수월해질 즈음 마침내 다른 나라로의 이동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프라하행 버스 티켓을 결제하던 날, 한국인 동행인이 생겼다. 보름 정도의 시간이 더 남아 있을 무렵이었고, 만남은 모두 드레스덴에서 이뤄졌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내가 점차 나의 내면과 기싸움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이 찾아와 참 다행이지 싶다. 누군가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는 일도 정성스럽게 하려다 보면 마음에 무리가 가버리니까. 

*알트마르크트(Altmarkt Galerie) 광장에서 먹은 독일식 감자전과 칩스 / 노이슈타트(Neustadt)의 한 인도 스타일 카페

Not my favorite thing, 팔레트 (하지만 순간 정신을 놓고 살 뻔했다)

그렇다면 깜찍한 여우 밴드는 기념품으로 어떨까? 카밀 핸드크림은 너무 빤하잖아.

(엽서 속 주인공은 동유럽 캐릭터의 심볼 격이란다) 부엉이 동전지갑은 신시가지에 처음 방문한 기념으로 내게 쥐여준 셀프 선물! 무려 2유로로 파격세일 중이었다. 미소가 나를 날씬하게 해줄 거라는 메시지가 적힌 마그넷은 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보지 않을 친구를 위한 깜짝 선물!




*5/17 am 독일에 온 후 처음으로 다리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 친절한 스타벅스 직원 덕분에 Ye I'm Henny! :) 라고 외치고 싶었던 오전.

다시 찾은 신시가지. 새로운 동행객을 위해 세미 가이드 흉내를 내봤다.

건물에 달린 모빌이 때마침 바람에 차분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 도시의 가장 예쁜 타투 같았던 쿤스트호프파사쥬(Kunsthofpassage)

따뜻했던 그림자들

그리고 그림자가 놀러 오기 딱 좋은 구조의 건물

맥주와 땅콩 말고 맥주와 바나나 (자매품 파프리카) 이날의 우리처럼 신선했던 조합

기대 이하의 학센을 먹었던 집에서 이번에는 파스타와 믹스 플레이트를 시켰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과연 정답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




오후의 그라데이션

예쁘다는 형용사는 1차원적이지만, 때때로 대상에 대한 가장 완전한 표현이 되기도 한다.
불이 켜진 아우구스투스 다리(Augustusbrücke)
신시가지 입구의 비어 가르텐에서 바라본 구시가지의 전경. 누군가와 함께 있으니, 내 밤에도 비로소 불이 켜진다.


error : 실수(특히 문제를 일으키거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 / 이날의 결과에는 좋은 영향을 미친 걸로

매일이 아름다운 이곳의 하늘은 어쩌면 트루먼 쇼의 장막과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유람선을 몰고 도망가는 대신 지나간 날들 생각에 창피해져 엘베강에 뛰어들겠지만. 그리고 나는 이 풍경을 또 보고 싶으니까, 이날 밤은 아무런 인사도 하고 싶지 않았다.

*5/17 pm 집으로 가는 9번 트램이 끊겨 4번 트랩과 63번 버스로 갈아탔던 밤 / 태연한 얼굴로 사진을 찍었지만 속으로는 스킨스의 OST를 떠올렸다.


It's hard to get by just upon a smile 
Oh baby, baby, it's a wild world 
I'll always remember you like a child, girl 

오랜만에 흥얼거린 가사가 이 봄 동안 나를 대하는 네 마음 같아서 다시 조금은 답답해졌고, 또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서 나는 한번 더 조금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 
좋은 사람들만 만난 며칠이었는데. 나는 아무래도 제자리인 것 같아.


하지만 지금 나는 여행자의 신분이니까, 내 깊이 없음에 대한 반성은 조금 더 미뤄두기로 하자. 언제 어디서고 내 취향의 한계를 느끼고, 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 경계선을 인정하고, 감춰져 있던 민낯과 바닥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기로 해.

작가의 이전글 [스치듯 드레스덴] 멈칫하던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