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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의대지 Mar 26. 2021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그림자의 사정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리뷰


예술가가 되려면 다른 준비운동에 힘을 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체.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라는 당연한 명령은 대부분의 재능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하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각자의 내면에서 살해당한 모차르트이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쌩떽쥐페리는 인간의 대지라는 책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인간이 특별한 이유가 자신만의 고독을 쌓기 때문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자신의 고유한 특별함을 잃고 판형에 찍혀 나온 공산품처럼 살아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모차르트가 될 수 없는 그림자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 창작 수업에 다니는 유치원 교사 로라는 천재적인 시를 아무렇지 않게 지어내는 아이 지미를 발견한다. 로라는 이상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망하지만 행동은 예술가의 태도와 전혀 상반된다. 주변의 찬사를 얻기 위해서 지미의 시를 자신의 시인 것처럼 발표하는 행위는 작품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예술가에게 용납될 수 없는 태도이다. 또한 그녀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억지로 투사한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잘 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망하는 예술적인 삶에 관심이 없어서 만족하지 못한다. 


예술가가 되려면 다른 준비운동에 힘을 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체.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라는 당연한 명령은 대부분의 재능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하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우리의 처지 사이의 간극을 떠올리면 우리도 대부분에 속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라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예술을 동경하지 않는 것도 불후의 명작을 써내는 일도 아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모차르트의 선율을 마치 알파벳을 배우는 아이들처럼 받아 적는 것이다. 그녀는 아무리 노력해도 모차르트에게 닿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살리에르이고 작은 시인의 영감이 무관심으로 날아가 버리지 않게 막아주는 정도만으로도 벅찬 최하급 뮤즈이다. 


정작 영화에서 지미의 뮤즈는 애나이다. 로라는 지미가 지은 시 ‘애나’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 유치원의 다른 교사임을 알고 절망한다. 시 ‘애나’에서 태양은 그녀(애나)의 노란색 문을 두드린다. 신이 보낸 신호처럼. 그리고 그 시의 구절에서 로라는 노란색 문이 태양을 한껏 머금고 남겨진 반대편의 그림자이다. 로라가 잠긴 화장실 문 뒤에서 지미와의 불가능한 미래를 상상할 때 듣게 되는 지미의 신고전화는 태양을 꿈꾸었으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로라의 운명 그 자체이다. 영화는 가장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배설의 공간인 화장실에 갇혀 우는 로라를 보여준다. 영화에서도 되풀이되어 나오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그림자들이 극복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독을 삼켜야 하는 공간이다. 


로라의 집착에서 구출된 지미가 도착한 공간은 경찰차 안이다. 안타깝게도 그곳은 태양이 비추는 노란색 문 앞도 로라가 데려온 화장실도 아니다. 이제 경찰차로 상징되는 안전한 사회 제도권이라는 거대한 영토는 작은 시인 지미에게 너무나 좁아 보인다. 지미가 앉아 있는 닫힌 문의 안쪽에서 다시 흘러나오려는 운율은 밖의 사이렌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앞서 인용한 쌩떽쥐페리의 말을 고려한다면 로라가 행하지 않은 범죄 하나가 지미가 겪은 사건 조서에 추가되어야 할지 모른다. 납치. 감금. 마지막으로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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