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불안의 뿌리 - 1
1990년 6월 어느 날. 나는 만 10살이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찾아온 사촌언니. 같이 나가자는 언니의 말에 집을 나서는 순간, 앰뷸런스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섰다. 나는 멀뚱히 멈췄고, 사람들이 아빠를 들 것에 실어 급하게 집으로 들어갔다. 이어 엄마와 여러 사람들이 울면서 그 뒤를 따랐다. 나는 뭐가 뭔지 감을 못 잡은 채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안방에 누워계신 아빠와 그 옆에서 울고 계신 엄마와 친척들. 나는 차마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문턱에 서서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모두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마지막 가는 아빠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아빠의 뺨에 뽀뽀를 하고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이 모든 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나는 죽음이 뭔지 잘 몰랐다.
그러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왔고, 사촌언니도 같이 들어왔다. 우리는 말없이 그냥 앉아있었다. 그러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생각해 보니 사촌언니는 어른들께 연락을 받고 내가 충격받지 않도록 일단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라는 얘기를 듣고 왔었을 것 같다. 집안이 좀 진정되면 같이 돌아오라는 얘기를 들었을 테지만 우리는 시간에 맞춰 집을 빠져나가지 못했었던 것 같다.
언니가 종이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집어 든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한참 후 오빠가 집에 도착했다. 그 당시 휴대전화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오빠는 골목길을 들어서다 대문에 걸려있는 근조등과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서 온 힘을 다 해 뛰어왔을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빠는 바닥에 드러누워 세상이 무너진 듯 온몸으로 울었다.
그 와중에 '나는 왜 저렇게 울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이미 철이 들었고, 나는 여전히 철이 없었다. 나는 죽음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울고는 있는데 제대로 울지는 못했고, 슬퍼는 하는데 제대로 슬퍼하지는 못했다. 멍하고 어색했다. 그런 내 모습에 오랫동안 죄책감이 들었다.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그건 단지 그 나이의 내가 죽음을 대할 수 있는 방식이었을 뿐인데.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 한 달 정도 병원생활을 하셨다. 어느 날, 아빠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가 울며 병원으로 향하셨다. 오빠와 나는 집에 남으라고 하셨다. 나는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어른들은 오빠와 내가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하셨다. 나중에 듣기로는 아빠의 상태를 보고 충격을 받을까 봐 그러셨단다. 신체에 마비도 있으셨단다. 엄마는 집과 병원을 오가며 생활하셨고, 우리는 아빠의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만 줄곧 들었다. 그저 곧 퇴원하셔서 집에 오실 거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앰뷸런스에 실려 집으로 오신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임종을 집에서 맞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아빠는 유언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다. 시간이 흘러 엄마는 아빠의 병이 뇌졸중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빠는 그렇게 우리를 떠나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