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땅콩이 박힌 페**** 초콜릿 같은 알 수 없는 동그라미를 억지로 입으로 집어넣으려 한다. 발버둥 치며 저항하고 입을 벌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도망쳤다.
다시 잡히고 말았다. 또다시 억지로 입으로 집어넣으려는 그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피했다. 끝까지 입을 벌리려는 그 손을 깨물어 버리려 해도 입을 벌릴 수 없기에 물 수 조차 없었다. 악다구니를 해대며 소리 질러봤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꿈이다. 다행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은 현실의 반영인 걸까. 요즘 기가 허한가. 우황청심환 같이 생겼던 그 덩어리는 피곤함을 달래주려던 약이었을까. 혹은 쇠똥구리가 굴리던 공 같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는 걱정 덩어리 였을까. 먹으라는 자와 피하는 자의 대립.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친구 J가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해삼을 먹으라고 들이민다. 한 손으로 움켜쥔 그 울퉁불퉁하고 물컹 거리는 것을 몸서리치며 피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데 먹지도 않은 해삼이 뱃속에서 기어 다닌다. 배가 아프다.
꿈이었다. 먹지도 못 하는 해삼을 꿈에서 먹고 체한 걸까 배가 계속 아프다.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위장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식은땀이 난다. 별게 아닌 것 같다.
이른 아침, 겨우 밖으로 나가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갔다.
병원 침대에 누우니 아프면 고쳐주겠지란 마음에 조금 안도가 된다. 수액을 맞고 진통제도 맞고 진정이 되려나 보다. 배를 꾹꾹 눌러보는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초음파 검사를 한다. 1번 갸웃, 2번 갸웃. 뭔데 뭔데 뭐 심각한 건가요. 알 수 없는 눈빛이 신경 쓰여 배가 또 아프다.
동생이 왔다. 보호자에게 설명을 한다. 다시 초음파를 한다. 갸웃, 갸웃 흠. 맹장염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자꾸 크기가 왔다 갔다 한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있을까. 꿈에서 본 해삼이 커졌다 작아졌다 그런 건가. 초음파 모니터를 지켜보던 동생은 자기가 봐도 이상하다 한다. 1미리만 더 커도 맹장염이 확실한데 자꾸 왔다 갔다 한다는 모니터 속 맹장. 자꾸 갸웃갸웃하는 초음파 선생님의 모습에 배가 아픈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혼란스럽다. 집에 갈까.
수술을 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묘하게 설득력 있다.
"일단 수술합시다. 맹장염 아니면 어때. 어차피 맹장 쓸데도 없는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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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전신 마취를 하고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내는 이 순간이 이리도 간단하게 설명될 줄이야.
어허. 참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배는 아프고 의사가 수술을 하자고 하니 저녁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이럴 수가. 며칠 뒤 우즈베키스탄 해외공연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가야 되는데.
보통 해외 공연을 갈 때는 그 공연에 참여하는 인원에 맞춰 작품 순서를 정하고 작품에 맞는 자리를 정한다. 비록 군무에만 출연하지만 분명히 맡은 바가 있고, 자리 하나가 비면 다시 자리를 정하고 그에 맞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배만 아픈 게 아니었다. 가시방석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미안했다.
다행히 교수님과 선배, 동료들은 걱정 말라며 수술 잘 받고 푹 쉬라는 말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남의 나라에 가서 맹장이 터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가시방석에 알맞은 자리를 병원에서 내주었다.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 한편의 응급 병실에서 2박 3일을 있었다. 회사 다니는 동생에게 계속 휴가를 내라고 할 수 없는터, 수술도 혼자, 회복도 혼자였다.
이상한 독립심이 싹텄던 건 이때부터였나 보다. 혼자서 병원에서 수술도 받고 회복도 했던 그날의 계기는 결국 출산 때도 혼자 병원을 가는 무식한 독립을 외쳤다.
모두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기에 학교는 텅텅 비어있었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갑자기 한 수술은 선물 같은 휴가를 안겨줬다. 웃기는 드라마를 보다가는 배가 다시 터질 수도 있다. 유행에 동참하기로 결심하고 프리즌 브레이크 정주행을 했다. 시즌 1을 섭렵했을 때 실밥을 뽑으러 병원에 갔다.
몸에 붙어 있는 장기도 쓸데가 없어 떼내도 된다는 마당에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의문이다. 사람이 쓸모가 없어지면 배를 갈라 떼내면 그만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의사에게 몸을 맡겼던 한심함에 소름이 끼쳤다. 아파서 제정신이 아녔다고만 결론 내려야 했다. 배꼽에 남겨진 수술 자국을 볼 때 마다 떨어져 나간 맹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이제부터 내 몸에 쓸모없는 곳은 없다 다짐을 하게 만든다. 자기애를 한껏 끌어올려 준 고마운 맹장 수술.
해삼을 먹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그날의 꿈이 기억나서 일지도 모른다. 정체 모를 덩어리를 삼키지 않으려 아등바등 애쓰며 꿈에서 깨어났다. 먹으면 아플 것 같은 덩어리를 피했다. 아프지 않으려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맹장 수술을 했던 그날처럼 갑자기 아픔이 몰아닥쳐 소중한 무언가를 쓸데가 없다고 떼내어버릴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