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배가 같이 가보자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아주 흔한 이유로요가원을 가보았다. 그저 선배가 가자고 하니 마지못해 승낙을 하고 따라나선 길이다.일종의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쫄래쫄래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나섰다. 얼떨결에 요가를 만났다.
한참 요가 비디오가 유행하던 시절, 동네 문화센터에서 원데이, 투데이 접했던 요가. 그런데 오늘은 사뭇 남달랐다. 제대로 내 몸을 들여다본 요가,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 몸뚱이가 맞나요.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머리로는 움직이라 지시하고, 근육으로 가는 신경이 길을 잃었다. 무뎌진 걸까. 머리는 몸을, 몸은 머리를 서로 닿을 수 없는 평행이론처럼 밀어내며 따로 놀았다. 수년간 춤추던 몸은 치과 안내데스크의 질펀한 엉덩이가 잠식하고 있었다.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을 자각하는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자상한 멘트는 들리지 않았다. 거울 속의 어색한 모습이 자꾸 비웃는다. 시야에서 보이는 다른 이들의 움직임이 자꾸 거슬린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내면을 바라보는 눈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나 보다. 보지 않는 여유 따위는 없었다.
몸을 앞으로 숙이면 숙일수록 다리와 배가 가까워지지 않고, 그 사이를 뱃살이 비집고 들어갔다. 몸통을 비틀면 비틀수록 척수 사이사이가 길어지기는커녕, 옆구리 살들이 뒤틀려 탈출하고 있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알 수가 없는 건 당연한 일. 들숨 날숨의 경계는 애초부터 없었고, 턱턱 막히는 목구멍에 딱 살 정도만 숨 쉴 구멍이 뚫려있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때마다 제발 좀 구해달라는 근육들의 아우성만 메아리친다. 흐르는 땀줄기를 타고 내려온 자존감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그렇게 요가를 만났다.
다음날, 온몸이 욱신거리는근육통으로 산산조각 난 몸뚱아리를 일으켰다. 살아있다는 안도감이 너덜너덜해진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동안 방치했던 몸이 말을 거는 듯하다. 왜 그렇게 돌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듯 말한다. 고통을 즐기며 인생의 쾌락을 느끼던 그 뿌듯함을 잊고 지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너덜거림에살아있음을 느끼며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운명처럼 만난 요가를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요가 자격증 따기!
어차피 남의 옷 입은 것 같은 회사생활은 그만둘 생각이었다. 좋아서 시작한 춤은 먹고 살기 팍팍한 전공이라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만들어 주었지만, 요가는 달라 보였다. 움직이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요가 강사. 이것은 운명이라는 틀에 박힌 착각을 하며 신나게 치과 안내 데스크를 탈출했다.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는 것, 역시나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새로운 배움에 신이 나 매일 수련을 했다. 한 호흡 들이마실 때마다, 새로운 배움으로 채워갔다. 한 호흡 내쉴 때마다 쓸데없는 미래의 잡생각들을 잊어냈다. 호흡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제야 숨 쉴 수 있는 목구멍으로 돌아왔다. 내 몸을 보듬어줄 수 있었던 시간들이 생겨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포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점점 더 유연해졌고, 단단해졌다. 삐뚤어진 몸을 바르게 만들 때면 마음의 모난 돌들도 다듬어져 갔다. 처음에 만났던 몸에 대한 죄책감은 자신감으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살아있음을 느껴가고 있었다.
자격증 시험을 볼 때는 대학 입시 때처럼 뭔가 자연스럽고 당당한 마음까지 들었다. 천직을 이제야 만난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