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하나, 둘, 세 개째 부풀어 오르고 있다. 역대급으로 부어오른 입술을 보니, 그날이다.
7년 전 눈이 오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집에 돌아와 보니 새우버거 패티가 하나밖에 없다. 분명히 더블 쉬림프 버거로 주문했는데, 패티 한 장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 딱 한 가지가 그렇게 어긋났다. 비싼 음식을 원하지도 예약하지 못하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배불리 먹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어서 햄버거 패티 두 장을 원했을 뿐이었다.
망했다. 자꾸 눈앞에 못 먹은 것들만 생각난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햄버거를 기어이 사 먹었다. 두장은 먹어줘야 성이 차는 새우버거는 자꾸 생각나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8시간 정도는 참을만했다. 자연주의 출산은 어디서 또 들어가지고 애기한테 좋다는 말에 무통주사는 맞지 않겠다 버텼다. 햄버거는 먹으면서 무통주사는 안 맞겠다니,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
소프롤로지 분만법
파도가 밀려옵니다. 진통은 1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출산 전, 첫 출산이기에 유난을 좀 떨었다. 애를 안 낳아봤으니 궁금했고, 모르겠고, 무서워서 병원에서 소프롤로지 분만법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하고 나서 받은 CD는 배가 아픈 중에도 잘 챙겨 병원에 왔다. 그런데 교육과 실전은 다르다. 애는 머리로 배운 지식에서 낳는 것이 아니었다. 나만 숨을 쉬면 뭘 하나, 소용이 없다. 숨이 안 쉬어진다. 요가 그 딴 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꾸 내진을 한다. 파도가 더 거세게 밀려온다. 자꾸 파도 타령하는 저 목소리를 던져버리고 싶다.
결국, 기절을 했다.
첫째는 엉덩이가 아주 무겁다. 앉은자리에서 꼼짝 않고 책 5권, 1시간은 기본. 아무리 불러도 내 목만 터지는 마이웨이 스타일.
그렇다. 이 아이는 내가 숨을 쉬어도 끙끙 앓고, 기절을 해도 자기가 엉덩이 떼고 나오고 싶은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암만 혼자서 아가야 엄마랑 얼른 만나자고 텔레파시를 쏘아대도 끄떡도 않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무거운 엉덩이.
12시간이 넘어가자 약물의 힘을 빌렸다. 쌍욕이 나올 정도로 배가 뒤틀렸다. 이젠 1분이 아니다. 자연 진통 1분, 촉진제 진통 1분 번갈아가며 주거니 받거니 자기네들끼리 아주 신명 나게 잔치를 벌인다. 이러다 죽는 건 아니겠지. 배만 아프면 될 줄 알았더니, 다리에 쥐가 나고, 얼굴까지 쥐가 올라와 말을 할 수도 없다. 내가 신랑한테 머리 끄덩이를 잡고 욕을 안 한 건 온몸이 안 움직여 행동을 못했을 뿐이다.
아직도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이 들어온다. 이러다간 내가 죽겠으니 백기를 들었다.
무통 놔주세요!
이제껏 16시간을 참았는데, 마취과 의사를 기다리는 몇 분은 몇 년 같다. 온다. 그분이 오셨다.
무통은 진정 천국을 가져다주나요. 믿습니다.
무통을 맞을 때 새우등을 만들어야 된다는 수많은 출산 경험기에서 배운 지 오래다. 새우등을 꼭 한 번에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안간힘을 써본다.
새우? 그 새우 버거. 또 새우. 계속 새우.
성공이다. 새우등을 가볍게 통과하고 등줄기가 시원하다.
천국을 맛보았다. 무통 천국
무통 발이 이렇게 잘 들 수가 없다. 가족들은 어이가 없었다. 아까 죽네사네한 그 산모는 어디에도 없었다.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애가 어디쯤 내려왔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아프지가 않았다.
촉진제가 아이를 끊임없이 재촉하자, 무통주사를 만난 지 2시간 만에 아이는 세상에 나왔다. 미친 무통 발은 아이가 나오는 순간까지 열심이었다.
단번에 힘을 빡 주고, 의사 선생님의 칭찬에 뿌듯해하며 생애 첫 출산을 무사히 치렀다.
꼬박 24시간 만에 우리는 만났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를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
전날 먹은 새우버거가 마지막이다. 어쩔 수 없는 배고픔에 못 먹은 새우 패티 한 장이 눈앞에 또 아른거린다. 평생 욕먹을 패티 1장. 그 소중한 한 장.
모든 출산이 그러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했다. 패티 두 장짜리 새우버거는 이제는 단종되어 먹을 수 없고, 내 입술은 껍질 까진 새우처럼 다 부풀어 터졌지만, 그날이 있기에 오늘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