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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 남자친구는 구 남친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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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언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랑의 깊이나 넓이가 존재는 하는 걸까. 사랑에 대해 짧은 생각이 스치는 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다.

날이 날이니 만큼 남자친구와 보통의 연인들처럼 점심도 먹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저녁을 먹기 엔 이른 시간, 카페에 들렀다. 우중충한 날에 맞는 따뜻한 커피가 먹고 싶어 M카페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저기에 앉자며 손가락으로 빈자리를 가리키고는 그는 화장실로 갔다. 손가락이 향하는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

왜.

네가.

너. 왜. 거기. 네가 거기에.


전 남자친구다.


널리고 널린 카페들 중에 왜 하필 여기 이 시간에 너를 마주친 거지. 왜 하필이면 이런 날에.

순간 갈 곳 잃은 동공을 수습하느라 잠시 멈칫했다.

다시 나갈까. 그건 좀 아니잖아.

왜 하필 너는 이 타이밍에 화장실을 간 거지.

얼른 돌아서 화장실로 갈까.

헤어진 연인을 한 번쯤 보고 싶은 마음이 오늘이길 바라지는 않았다.


남자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전 남자친구를 마주 보고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얼른 앞에 보이는 빈자리로 눈을 돌려 앉았다.

뒤통수가 간지럽다.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밀어 시야에 그를 확보하려 했다. 여자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최대한 들어보려 귓구멍을 크게 열어젖혔다.

에잇, 음악 소리가 큰 걸까 귀에 살이 찐 걸까. 평소에는 소머즈 같은 귀가 영 작동을 안 한다. 왠지 모를 이상한 초조함에 다리만 떨고 있다. 왜 그는 하필 이럴 때 빨리 오지 않는 걸까.


@photo by pixabay


그가 왔다. 조금 안심이다. 밸런타인데이에 서로 커플로 온 게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서 그 커플을 마주쳤다면. 음. 그냥 K. O. 청승. 진짜 싫다.


그는 왜 자기가 앉자고 했던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데 앉았냐며 묻는다.

네. 거기는 제 옛 남자친구가 바로 마주 보는 자리라서 못 앉겠습니다.


그가 저녁으로 뭘 먹을까 물어본다.

네. 저는 아무거나 다 먹을 수 있습니다. 옛 남자친구와 같이 있는 여기만 아니면 됩니다.


그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당연히 내 귓구멍은 아직도 뒤에 앉은 커플의 말소리를 동냥 중이다. 건질만한 대화도 없는데 신경 쓰고 있는 건 왜 그러는 걸까.


미련이 남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잘 만났고, 그만하면 잘 헤어졌다고 생각했다. 단지 좀 더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누구나 헤어진 연인에 대한 눈곱만큼의 미련은 남겨두기 마련이니까. 언제나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은 혼자서 결정할 수 없기에 이별을 받아들였다.








정신을 차리고 현재에 집중을 해보자.

이 사람이 훨씬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지금의 마음은 이 사람을 향해 있다.

분명하다. 분명하다. 분명하다.

확실하다. 확실하다. 확실하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하. 이건 모르겠다.


갈대 같은 여자의 마음이 이런 건가. 비교하지 말자는 마음은 오히려 이상한 쪽으로 흘러만 가버렸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핑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일어섰다.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

현 여자친구는 키도 크고, 날씬했다. 활짝 웃으며 일명 주시꾸띄르 필 까만 벨벳 나팔 트레이닝팬츠를 펄럭이며 그의 옆으로 간다. 오빠를 부르며 팔짱을 끼고 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곁눈질로 바라봤다.

괜히 옷차림을 한번 쓱 봤다. 신경 좀 더 쓸걸. 평소에 신경도 안 쓰던 옷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린다.


마음으로 안녕을 고하며 창밖의 그들이 얼른 사라지길 바랐다.

생각지도 못한 발레파킹이 그들을 창밖에 머무르게 한다. 그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괜히 또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척 양손으로 머그컵을 감싸고 두 눈만 그들에게로 향한다. 입모양을 바라본다. 그녀의 웃음을 바라본다. 그는 활짝 웃지는 않는다. 미소를 짓는다. 이 안도하는 마음은 뭐지.


눈치챘을까. 얼른 앞에 있는 현재진행형으로 눈을 돌렸다. 괜히 찔리는 마음에 빤히 바라보며 웃었다.

눈치챘을까. 그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보며 억지로 웃었다. 아직도 그의 말이 물속에서 웅얼거리는 알지 못할 소리들이 되어 떠다니고 있다. 그 사람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을까.








사팔이 소머즈가 될 뻔한 그날, 한 번만 더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현실이 되어서였을까. 스페셜 서프라이즈 선물 덕분에 말끔히 사라진 미련은 눈 비비다 대충 떨어진 눈곱 정도였을까. 핑퐁 게임 탁구공이 사라져 버린 지금, 현재의 만남에 모든 열정을 쏟아보기로 했다. 언제 또 닥칠지 모르는 이별의 미련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을 사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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