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지구 중력을 발가락 하나로 지탱해 온몸으로 날갯짓하는 백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누구나 아름답다는 객관적 미학에 주관이 더해져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백조가 되고 싶었다.
동네 무용학원에서 살 빼는 아줌마들의 운동 에어로빅을 다니던 엄마는 살도 빼고 몸매도 좋아지는 무용을 사촌언니에게 권유했다.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는 흔치 않았던 발레. 그렇게 사촌언니는 무용이란 걸 했다. 신기했다. 초등학교 1학년, 언니가 하는 건 모든 게 부러울 나이의 꼬마는 분홍색 레오타드와 살색 타이즈, 핑크빛 슈즈를 보여주는 언니가 대단해 보였다.
졸랐다. 무용을 시켜달라 계속 졸랐다. 얼굴만 보면 무용 타령을 하던 나에게 엄마는 미지의 약속을 건넸다. 사촌언니도 3학년 때 무용하기 시작했으니 너도 3학년이 되면 시켜줄게라는 지켜질지 알 수 없는 손가락 고리를 걸었다.
엄마는 어린아이의 투정을 잠시 잠재우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조그마한 그 마음에 3학년은 저절로 먹는 나이의 의미가 아니었다. 무용을 꼭 배우고 싶은 열망의 보물상자를 열 수 있는 행운의 열쇠였다.
2년을 마냥 기다리기는 힘이 들었다. 언니는 어느새 실력이 늘어 분홍색 토슈즈를 신는다며 자랑을 했다. 발끝으로 꽃꽂이 서있는 다리가 신기했다.
부러움을 억누르지 못한 작은 꼬마는 아무도 모르게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 몰래 토슈즈를 꺼내보았다. 윤기 나는 분홍색 공단의 부드러움을 손 끝으로 쓸어본다. 딱딱한 토슈즈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본다. 아무도 없지만 그 조용한 손가락 움직임이 조심스러워 주위를 둘러봤다. 조심히 발도 넣어봤다. 핑크빛 리본으로 발목을 감아 작은 리본으로 묶었다. 발 끝으로 살짝 바닥을 누르며 일어섰다. 발가락 하나로 서있다니. 몰래 신는 토슈즈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비밀스러운 착각으로 데려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발레를 배울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미운 오리 새끼는 깃털의 축축함마저도 행복했다.
현실 앞에서는 어린 나이에도 상처받을 수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알아버렸다. 우리 집의 형편을.
학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극장을 대관해서 학원생들을 데리고 발표회를 한다. 조르고 졸라 발표회는 할 수 있었지만 솔로 작품을 받는 아이의 곁에서 춤추는, 군무 밖에 할 수 없었다. 잠시 잠깐 나오는 그 몇 분을 위해 어린 꼬마는 연습을 했지만, 혼자 추는 춤은 출 수 없었다.
어린 자존심에 다시는 무용을 하지 않는다 다짐했다. 싫증이 났다며 무용학원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엄마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더 다녀보지 않겠냐 설득하지 않은 건 뻔한 집안 형편 때문이었겠지. 스스로 안 한다 하니 옳다구나 하셨겠지. 지풀에 지가 꺾이니 엄마로서는 땡큐였겠지.
그 후로 잠잠했던 무용앓이는 사춘기와 함께 찾아왔다.
딱 중2병. 그 무섭다는 중2병이 찾아왔다. 무용만 하면 뭐든지 괜찮을 것 같았다. 다시는 무용을 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자존심과 맞붙었다. 배가 아팠다. 학교가 가기 싫었다. 그냥 다 싫었던 알 수 없던 마음이 유일하게 향하고 있던 곳은 발레였다. 끌림에 이끌려 기어이 또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무엇에 이끌려 가고 있었을까. 어른들은 이미 아셨겠지. 이 길로 가면 외롭고 힘든 길이 될 거라고. 그래서 말리셨겠지.
도통 고집이 꺾이지 않는다. 소고집 땅고집 똥고집 고집이란 고집은 다 끌어모아 필사적으로 원하는걸 이루리란 결의로 가득 찼다. 뻔한 집안 형편에 가당치도 않은 발레. 어쩌겠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자식 소원은 당연히 부모로서 들어주고 싶을 일이다. 이번에도 좀 그러다 말겠지 그런 마음이셨을 것이다.
이번엔 달랐다. 꺾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 가서도 하겠다한다. 대학까지 바라보고 작정하고 무용을 한다는 이 철없는 청소년은 단식 투쟁을 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딱 그 마음을 품고 혈기 왕성한 사춘기 소녀는 의지를 불태웠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그냥 좋은 것,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맹목적 사랑이향한 곳은 무용이었다. 손과 발을 마음대로 흩날리며 날아오를 그 순간으로 향해가고 싶다.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