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치밀함 따위는 없다. 생각보다 게으른 몸뚱이와 매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가 콜라보가 된 삶을 살고 있다. 애가 셋이 된 후로 마음먹고 무슨 일을 하려 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기기에 포기가 빨라졌다.
가령,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면 엄마를 부른다. 한 명이 부르기 시작하면 돌림노래가 시작된다. 3x10x10x...=무한. 싸운다.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옆에 꼭 붙어있는다.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마우스를 움직인다. 노트북 터치패드를 터치터치터치. 키보드도 독수리 타법 타타타. 쓸 수가 없다.
아이들을 재우고 마음을 다잡아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 재우다 같이 잠든다.
미라클 모닝을 해본다. 5시 55분 알람이 울리자마자 빛의 속도로 알람을 끄고, 아이들이 자고 있는 틈에서 까치발로 살금살금 탈출을 시도한다. 아뿔싸. 걸렸다. 다시 눕는다. 다시 잔다.
어쩌다 탈출에 성공하면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일찍 일어난 자신에 대한 대견함과 상쾌함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쓱 한 명이 나온다. 망했다. 혼자만의 시간은 없다.
어쩌다 아무도 잠에서 깨지 않은 나만의 시간, 성공한 미라클 모닝에 끄적이는 혼자만의 온전함은 단단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는 해도 티 안 나고 안 하면 더 티가나는 집안일이 기다린다. 집안일을 무시하고 집 밖으로 나가볼까 마음이라도 먹으면 꼭 왜 하필 그런 날에는 아이는 아픈 걸까. 한 명이 아프면 줄줄이 사탕, 비엔나 줄 서기가 시작된다. 기침이라도 하면 돌림병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건 일상이다.
언제 쓸 수 있는가. 틈틈이 쓴다. 이제 글을 쓸 겁니다. 준비 시작을 못하는 인생, 포기가 빨라진 삶에서 틈틈이핸드폰 메모장과 브런치 앱을 적극 활용한다.
첫째 태권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3분, 아이들이 티브이를 볼 때 10분,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했을 때 5분.
막무가내로 떼쓰는 둘째를 달래 놓고 한 줄, 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고 싱크대에 기대서 한 줄, 화장실 갔을 때 한 줄, 냄비의 국이 끓어오르기 전 한 줄, 아이들에게 과일을 내어주고 엄마의 존재를 잊었을 때 한 줄.
일단 차곡차곡모아놓는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호르몬의 영향이었을까. 배가 불러올수록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아 괴로웠다. 분명 아이를 키우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어진 채 집안으로 버려진 느낌이었다.
아까웠다.아이를 온전히 책임지고 낳고 기른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의미한일이지만, 가장 하고 싶은 사회생활과 맞바꾸어야 했다.
오히려 셋째가 태어나고부터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오히려 당당해졌다고 해야 할까. 겁도 없이 애도 셋이나 낳았는데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애가 셋이라 포기가 빨라진 이 삶이 익숙하지만, 끝까지 놓지 않을 것들은 확고해졌다. 글쓰기 그 찰나의 틈을놓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셋째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 시작 10분 전, 놀이터 정자에 앉아 패딩 점퍼 모자를 뒤집어쓰고 스마트폰으로 손가락을 탁탁 두드리고 있다. 손이 시려 주먹을 폈다 쥐었다 난리가 났지만 손가락이 멈추질 않는다.
가끔 엄지 손가락, 손목이 시큰 거리는 게 흠이지만 스트레칭을 하라는 몸의 신호 또한 반갑게 받아들여본다. 틈날 때마다 쓴다. 병이다.
셋째의 낮잠시간, 숨죽이며 핸드폰 화면을 켜본다. 달콤한 낮잠과 맞바꾼 찰나의 틈에도 글은 계속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