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이 뭐냐고 해맑은 웃음으로 부엌에 다가오는 너. 어제 남은 꽃게된장찌개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빼~~~~~~~~~~~엑 소리를 지른다.
"떡국 먹고싶 다!!! 고~~~~~~!!!!!
아이유 삼단고음 저리 가라 할 만큼 미친 고음으로 소리를 지르는 저 아이는 내가 낳은 아이다. 말이 안 통하던 3살 무렵, 날이 추운데 입고 있던 잠바를 벗겠다며 놀이터를 대륙 횡단하며 울어대던 아이이다. "아~~~~~~~~아~~~~~~아~~~~~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우리 집 둘째는 울음이 유독 격한 아이라 그 당시에는 진정이 안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기다려주는 것뿐이다. 저 엄마는 애를 울려놓고 달래지도 않는 이상한 엄마라는 핀잔 섞인 눈빛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얼마 전 2023년 1월 1일, 다 함께 식탁에 옹기종기 앉아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전설과 함께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였다. 한 살 더 먹은 형님이 되고 싶었던지, 아이들은 순식간에 떡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낮잠도 거하게 푹 자고 기분 좋게 시누이와 어머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출동했다.(시어머니는 5분 거리에 시누와 함께 사신다. 이것 또한 나중에 썰을 풀어드리겠다.)
다 함께 치킨 파티를 맛있게 치르고, 우루루루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어머님은 떡국떡을 주시면서 엄마한테 끓여달라고 하라며 집으로 돌아가는 손자와 헤어지는 인사말을 남기셨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의 말씀을 꼭 지키겠단 의지로 아이는 떡국이 먹고 싶다 했다. 그걸 굳이 까먹고 저녁에 생각이 난 엄마는 대역죄인이 되었다. 왜 떡국이 없냐는 괴성과 함께 떡국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듯이 소리소리를 지르며 날뛰었다. 엄마가 까마귀 고기를 먹어 자꾸 까먹는다는 말도 안 되는 유머로 사과하고 극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내일은 꼭 떡국을 끓여주겠다는 굳은 맹세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다음날, 다행히 잊지 않고 떡국을 한솥 끓였다. 떡국이 나온 저녁 밥상이 마음에 든 아이는 세상을 가진 듯 흐뭇해하며 숟가락으로 하얀 떡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이야기했다. "엄마! 나 오늘 점심때 유치원에서도 떡국 먹었다~!" 정말 헐...이다. 또 떡국? 유치원에서는 떡이 동글동글하고 가운데가 쏙 들어가 있었다며 신기방기해하는 아이는 그 떡과 이 떡은 다르다며 좋아라 한다. 이 떡이나 그 떡이나 그게 그 떡일 텐데.
이쯤 되면 떡이랑 원수를 진 게 틀림없다. 신정에도 먹고 오늘 낮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었는데 왜 질리지 않는 거니. 너에게 떡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인 거니. 야무지게 떡국을 한 그릇 먹고 일어서며 이야기한다. 내 귀를 의심할 만한 한마디. "엄마! 떡국 너무너무너무 맛있어. 또 떡국 해줘~!"
그다음 날, 오늘 국은 뭐냐고 물어본다. 된장국이라 했더니, 자기는 싫단다 떡국을 먹고 싶단다. 어제 점심도 저녁도 떡국을 먹었지 않냐며 오늘은 이걸 엄마가 준비했으니 내일 떡국을 먹자 했다. 자기도 조금 떡국이 물릴만했는지, 꽃게 다리를 보자 싱글벙글하며 꽃게랑 대화를 나누며 떡국은 내일 꼭 먹자고 한다. 또?
다음날, 애도 낳고 뇌도 낳은 엄마는 떡국의 ㄷ도 생각을 못했다. 오늘은 떡국을 끓였냐며 해맑게 물어보는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어제 넘어간 떡국 오늘은 못 넘긴다. 다음은 예상대로였다.
"떡국 먹고 싶다고 했 잖 아~~~~~~~~~~~~!!! 싫어. 싫어. 된장국 싫어~~~~~~~~~~~~!!! 당장 떡국 끓 여 줘~~~~~~~~~~~~~~~~~!!!"
@istock
내가 까먹었으니깐, 듣고도 참는다. 진정될 때까지 참는다. 자꾸 화가 스멀스멀 솟아오른다. 한번 더 참는다. 안 그래도 하기 싫은 밥 차리기가 더 짜증이 난다. 밥상을 엎고 싶은 분노가 계속 쌓이면서 발산하고 싶어졌다.
"먹지마!!!!!!!!!!!!!" 웬일로 입 밖으로 뱉어지지가 않는다. 평소 같으면 1단계 2단계 3단계 대포 발사 샤우팅인데. 오늘 같은 5단계 핵폭탄 투하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왜 오히려 차분해지는가. 화난 아이가 조금 수그러들 때쯤 안아주었다. 투정이 부리고 싶은지 갑자기 발을 굴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화가 안 난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려 한다. 떡국에 한 맺힌 귀신이 나한테 하소연이라도 하는 건가. 미친 건가.
방으로 들어와 눈물을 훔치며 얼른 잊어버리려 딴생각을 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먹먹하고 답답하고 절절한 이 기분, 고구마 백개 먹은 듯 꽉 막힌 숨통.
해맑게 엄마를 찾는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떡국은 안 찾는 걸 보니 돌아왔구나. 콜라 한 모금을 들이키며 다시 숨을 쉬어본다. 어머님이 신랑 어릴 때부터 그렇게 콜라를 한 캔씩 따 드셨다더니, 이런 건가.
아직도 답답하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살포시 안겨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아이의 모습에 눈 녹듯 마음이 녹아내린다. "엄마! 내일 꼬~~~~ 옥 떡국 끓여줘~!"
뭐, 또? 떡국?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떡국이 먹고 싶은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그냥 맛있어서라고 하겠지.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데 떡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그런 건데, 그래도 너무하다.
내일도 떡국을 먹을 생각하니 또 숨이 막힌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며 신랑에게 이야기했다. 떼쓰는 저 놈들 키워놓고 나중에 우리 둘이 재미있게 놀자는 말에 잠시 위로를 얻는다. 아무래도 소리를 안 질렀더니 화병이 난 것 같다고 같다. 화를 다스리는 거 그거 아무나 못 할 짓이다. 육아 전문가님들, 애가 화낼 때 같이 화내면 안 된다면요. 그럼, 이 화는 어찌하나요.
괜히 참을 인 새기려다 숨 못 쉬지 말고 내일은 마음껏 소리 질러 최강 락커가 되리라.
겨우 고른 숨소리 들으며 생사를 확인하고 시계를 보니 10시 30분. 새벽 배송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두르자.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사랑스러운 아이는 떡국은 언제 먹냐며 또 물어볼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또 떡을 홀라당 까먹는다면 내일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불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