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들꼬들 한 면발을 확인하며, 식은 밥과 김치를 챙겨 텔레비전 앞에 작정하고 상을 차렸다. 드라마 <일타 강사 스캔들>을 틀었다.
이제 라면을 먹을 준비는 끝났다. 비장하게 면발을 후후 불어가며 눈은 텔레비전을 향했다. 갑자기 두 주인공의 연기가 눈물샘을 자극했다.면발을 씹다 말고 눈물이 솟아오르자 눈을 껌벅이며 참아봤다.
누가 옆에 있으면 왜 이렇게 울기가 싫은 걸까. 자존심은 눈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영원한 내편이니 눈물쯤은 괜찮겠지. 계속 올라온다. 터져버렸다.
"전도연이... 이이이이... 연기를... 너무 잘해...에이...엉..엉..어어어어엉"
흐흐흡 오열
오열을 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민망해서 더 울었다.
웃는다. 그가 면발을 뿜을 뻔했다. 그래. 난 또 이 남자에게 큰 웃음을 주었구나. 너 하나 웃겨줬으니 내 눈물도 헛되지 않았구나. 참 잘했다.
요즘 둘이서 드라마를 보며 자꾸 대화를 나눈다. 쟤는 누구냐. 얘는 왜 저렇게 됐냐. 이 드라마 노팅힐스럽지 않냐는 말에 그가 맞장구 쳐준다.
아. 이런 만담. 본 적이 있다. 이건 흡사 아줌마들이 어제 본 아침 드라마 리뷰로 피 토하는 설전을 하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는 그런 상황 아니던가. 드라마 수다를 떨다니. 그새 우린 많이 친해졌나 보다. 서로 편해졌나 보다.
우린 서로 다른 취향을 가졌다. 그는 영화관만 가면 아늑함과 어두운 조명, 피곤하다는 핑계로 잠을 잤다. 코는 골지 않기에 깨우지는 않았다. 데이트를 한다는 것,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 같이 영화를 보러 가 잠들어 있는 그를 보면서 취향이 맞지 않는 영화를 억지로 보러 가는 건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영화관에 매일 가는 건 아니었기에 둘 사이의 취향 따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도 취향을 파악하기 힘들다.
몇 년 전 결혼기념일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데이트는밥과 영화라는 틀에 박힌 코스로 설계했다. 영화는 유명한<기생충>을 봤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
그는 졸지 않았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집중하는 그의 눈동자는 빛났다. 오늘은 그를 재우지 않았다며, 선택이 탁월했다며 내심 흐뭇해했다. 신경 쓸 거리가 제거되니 영화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기생충>은 좋았다. 이래서 봉준호, 봉준호 하는구나. 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라며 감탄을 하며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봤다.
영화관 불빛이 밝아지자 이 남자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왜. 너무 불편하단다. 이 미친 감정 이입은 뭐지. 이렇게 몰입형 인간이었나. 이상하게 신랑 기분이 안 좋아졌다. 좋기만 하던데, 상류층 깐 것도 다 죽인 것도 아빠가 안 잡힌 것도 너무 좋던데.구성이 기가 막히던데. 난 감정 이입 못하는 사이코패스인가.기분만 잡쳤다. 묘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이상한 결혼기념일이 되어버렸다.
한 가지 득이 된 것도 있다. 감정 이입을 충만히 이끌어준 대작 <기생충>은 어색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지만, 이 남자도 영화를 집중해서 본다는 걸 입증했다.
그랬던 그가 드라마를 같이 본다. 요즘 종종 드라마로 대동단결 된 우리가 좋다. 아직도 취향은 딱히 모르겠지만, 하나의 주제로 서로 오고 가는 대화가 즐겁다.
자꾸 몰입을 방해하는 그의 질문은 좀 귀찮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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