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별도의 레시피가 없는 그저 굽기만 하면 되는 구이 요리를 선호한다. 고기는삼겹살, 목살, 가끔은 소고기로돌려 막고, 어떤 날은생선도 굽는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다.
아이의 학교 앞 동네 슈퍼로 들어가면 샵인 샵 개념의 정육점이 있다. 사장님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기를 달라하면 고기만 주신다. 오늘 고기는 뭐가 좋다 이런 추천은 없다. 그냥 달라는 것만 딱 주신다. 아이들 먹을 거라 연한 걸로 주십사 하면 오래 안 끓여 그런 거라며 고기가 질기면 고기를 푹 오래 끓이라 하신다. 안심은 얇게 썰면 맛이 없다고 절대 얇게 썰어주지 않으신다. 사장님의 무뚝뚝함과 고기 부심은 영 적응이 안 되지만 여러 군데를 돌아봐도 여기 만한 고기가 없다.
항상 맛있는삼겹살, 오늘도 맛있겠지.
군침을 삼키며 집에서 제일 큰 프라이팬을 달궈놓는다. 사온 고기를 꺼내 놓고, 열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려 본다. 어느덧 뜨끈한 기운이 올라오고 이제 고기를 올려 볼 차례.
한 줄, 두줄 나란히 나란히 프라이팬에 빈틈을 최대한 없애 줄을 세웠다.
어라. 비계덩어리가 보인다. 무뚝뚝하지만 항상 맛있는 고기를 주시는 사장님이 배신한 걸까. 눈살이 찌푸려졌다. 붉은 살과 흰 비계가 적절히 섞여 있어야 삼겹살 아닌가. 비계만 많은 것도 살코기만 많은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살코기가 많으면 퍽퍽하지만 꾹 참고 씹어먹기라도 할 텐데. 이건 뭘까. 프라이팬 닦으라고 주신건가.
다이어트 중인데 고기 굽는 냄새에 괴로워 그깟 비계 한덩어리 딸려 들어왔다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걸까. 뭘 이렇게 까지 신경 쓸 일인가. 요즘 너 살 뺀다고 신경이 예민한 거니.
어라. 이건 비계가 아니다. 아니, 이것은 항정살.
한 점의 항정살을 발견하고 정육점 사장님에 대한 태도가 360도 공중회전을 한 뒤 만점 착지를 했다. 이런 반전 선물을 주시다니.
오늘 삼겹살 보다 좀 더 비싼 항정살을 살까 말까 고민했었다. 순전히 비싼 것도 비싼 거였지만 다이어트하는 중에 쫄깃한 항정살은 참을 수 없었다. 고기라면 다 좋아하지만 항정살보다는 일상적인 삼겹살이 먹고 싶은 욕구를 좀 더 눌러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항상 항정살 20,000원어치 한팩을 썰어 놓는 진열대를 바라보다 혼자 먹을 정도의 양 밖에 안되기에 그냥저냥만만한 삼겹살만 가져왔다.그아쉬움을 어떻게 아셨지.
항정살 한 점에 우연한 일상의 기쁨을 발견해 본다. 고기를 사고 나와 식빵만 파는 식빵집으로 간다. 오후 느지막이 가면 식빵을 못 살 수도 있는 곳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보니 역시나 식빵이 딱 하나만 남아있다. 이런 행운이.계산을 하는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들어온 한 아주머니는 바로 앞에서 빵이 끊겼다며 아쉬워한다.
마지막 남은 식빵 그게 뭐라고 명품 리미티드 에디션 오픈런으로 득템을 한 것보다 뿌듯하다.
식빵 봉지를 흔들며 가는 길에 야쿠르트 아줌마 전동차에 들린다.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서너 번 작은 야쿠르트40개는 기본으로 사가는 vip를 위한 챙김일 수도 있겠지만, 샘플이 있을 때 꼭 온다며 운이 좋다며 한번 먹어보라며 신상품들을 챙겨주신다.
야쿠르트를 사서 길 모퉁이를 돌면 조그마한 커피집이 있다. 아이들과 주스 한잔을 사러 들리면 항상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시는 젊은 사장님은 과자 하나라도 더챙겨주려 하신다.
그렇게 가게 몇 군데를 지나가며 집으로 오는 길은 많은 분들의 웃음과 인심으로 만들어진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