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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Apr 17. 2023

다이어트 어디까지 해봤니.

절대 따라 하지 마시오.


중2병을 잠재울 묘책이었던, 무용을 시작했다.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얼굴만 보면 언뜻 날씬해 보였지만, 발레를 하기에는 허벅지가 두꺼웠다.

깡말랐던 초등학생 때보다 성격이 유해졌는지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인지 하체가 튼튼했다.


어떻게든 살을 빼서 발레리나가 되어야만 한다. 

온갖 다이어트 법을 다 동원했다.


원푸드 다이어트

: 누구나 아는 한 가지 음식만 먹는 원푸드 다이어트. 가장 흔한 과일인 사과를 선택했다. 주야장천 먹었다. 아침, 점심, 저녁 3일 동안 사과만 먹으니 저절로 살은 빠졌다.

그 뒤에 유지를 위한 식단이 문제였다. 보기보다 먹성 좋은 대식가인 10대 소녀는 먹어도 먹어도 너무 잘 먹는다. 세상에 모든 음식이 맛있어 보이던 시절 다이어트 용 사과도 맛있었다. 사과만 먹다가 다른 걸 먹으니 주체할 수 없는 입맛이 돌았다. 3일 동안 줄어든 위의 용량을 애써 다시 늘리며 다음 다이어트 준비를 했다.


황제 다이어트

: 고단백 다이어트 유행이 불었다. 탄수화물을 절제하는 다이어트 방법.

엄마는 도시락으로 고기를 싸주셨다. 삼겹살.

뭘 먹어도 맛있는 나이에 고기면 말 다했지.

지방 없는 소고기 안심이었다면 다이어트가 됐을까.

식어도 맛있는 삼겹살은 다이어트 음식이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안 되는 다이어트 식단은 포기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밤 9시 이후에는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더운 여름날, 웬만해선 빠지지 않는 살들을 위해 무용 학원 원장 선생님과 현대무용 선생님은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다. 극강의 땀 빼기가 시작됐다.

*절대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사우나에 들어갈 때 랩을 두르고 가는 어머님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땀을 많이 내기 위해서 랩을 감고 땀을 내는, 일명 랩 다이어트.

현대무용 시간 옷을 갈아입으며 온몸에 랩을 둘렀다. 팔, 다리, 배에 랩을 칭칭 감고 살에 찹찹 붙어있으라며 꾹꾹 눌렀다. 거기에 레오타드(무용복)와 타이즈를 입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랩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미친 창의력은 지금부터다.

그 위에 비옷을 입었다. 급하게 비가 올 때나 입는 하얀 비닐의 커다란 비옷을 비도 안 오는 오뉴월 대낮에 뒤집어썼다.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지.

비옷을 촥촥 몸에 밀착시켜 땀복을 입었다. 땀복만 입어도 비닐이라 땀이 잘 나는데, 랩과 비옷, 땀복의 3중 차단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차오르는 마법 같은 효과를 불러왔다.

돌아다니는 훈증기가 되어 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견딜만했다. 사그락거리는 비옷의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초반의 바 순서를 할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땀구멍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느껴지는 정도.

움직임이 많아질수록 땀 줄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고, 점프를 할 때마다 머리카락 끝으로 땀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바 순서의 막바지쯤에는 몸 곳곳에 줄줄 새는 비를 비옷이 막아주었다.

머리에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얼굴은 너도나도 홍당무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가 끝난 쉬는 시간, 물은 마실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땀복을 벗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구리구리한 땀냄새나는 땀복은 푹 쪄낸 양배추 마냥 후들후들해졌다.  

비옷을 벗자 뚝뚝 떨어지는 육수가 냉면 그릇 한 사발이다.


이렇게나 땀이 잘 는 몸이었던가.

수업을 하는 2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축축한 비닐을 다 벗어던지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온몸의 기름기와 육수를 빼낸 상쾌함이란.




다행히 극강의 랩 다이어트는 일회성으로 끝이 났다. 땀과 몸무게의 감량은 비례하는 걸까. 웬만해선 땀 흘리지 않는 몸에 땀구멍을 잠시 열어준 건 확실하다.


여전히 허벅지가 굵어 슬픈 소녀의 다이어트는 끝나지 않았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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