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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Mar 22. 2023

본격 엄마 맞춤용 글쓰기

돈가스는 기억이 납니다만.

엄마가 자기 얘기는 하지 말라더니 '아빠 사랑해요'를 보고 질투가 난 걸까. 

전화가 왔다. 이건 이야기해도 된다며 내 기억에는 없는 글감을 하나 던져주셨다.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 동네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엄마, 아줌마는 하교 길에 항상 집으로 불러 간식도 주시고, 밥도 해주시고, 심지어 숙제도 봐주셨다. 맞벌이하는 바쁜 엄마가 아줌마처럼 집에서 나를 챙겨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아줌마가 튀겨주시던 돈가스가 생각이 난다. 고기에 밀가루 살살 묻혀, 계란물 입히고, 빵가루를 덮은 집에서 만든 돈가스. 별다를 게 없는 돈가스인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갓 튀겨낸 돈가스를 잘게 썰어 내어 주셨다. 수북이 쌓인 돈가스 한편에는 항상 빨간 케첩이 함께 있었다. 돈가스 하나 콕 찍어서 케첩도 한번 콕 찍어 먹는 그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요즘도 돈가스는 케첩을 찍어먹는 게 좋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블로그



어느 날, 친구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며 모델하우스 책자를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친구의 계속된 새집 자랑에 샘이 났는지 엄마한테 친구가 밉다며 이제 같이 안 놀 거라며 투덜댔다고 한다. 내 기억에 없는 나의 이야기. 난 아줌마가 튀겨준 돈가스와 케첩만 생각난다.


그렇게 잘 챙겨주시는 아주머니에게 미안하고, 잘 지내던 친구 사이가 걱정된 엄마는 묘책을 생각했다. 선의의 거짓말.

엄마는 똑같은 모델 하우스 책자를 구해서 우리도 2년 뒤에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며 그렇게 뿔 낼 필요 없다고 나를 달래셨다. 그 말을 듣고 엄마 그게 진짜냐며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고, 그날 이후 친구에 대한 불평불만은 쏙 들어갔다고 한다. 엄마의 현명한 거짓말 덕분에 그 친구와의 사이는 계속 평화로웠다. 돈가스도 먹었다.


엄마는 자식이 주눅 드는 게 싫으셨겠지. 잘 지내던 친구 사이가 틀어지는 것도 걱정되셨겠지. 자식의 자존심은 지켜주고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은 걷어내게 해 준 말 한마디, 감사하다.


2년 뒤.

우리는 이사를 가긴 갔다.

새 아파트는 아니었다. 헌 집이었다.





적고 보니 엄마 자랑이다. 엄마 이만하면 만족하십니까.

엄마는 2주 뒤에 서울에 손주들을 보러 오실 예정이다. 화만 내지 말자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중이다.


사랑합니다.

(역시나 사랑해라는 식상한 말로 마무리해야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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