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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Apr 23. 2023

프리오더의 늪

한때 물욕이 흘러넘쳐 주최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SNS 속 인플루언서들의 프리오더(선주문) 시스템에 홀린 듯 주문을 했다.

O월 O일 11시 프리오더 시작 전에 미리 로그인을 하고 준비된 시간에 광클릭을 했다.

주문에 성공할 때면 재빠른 손놀림을 칭찬하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가끔 주문 날짜를 놓치거나 접속 폭주로 인해 주문을 하지 못하면 안타까워했다.

주문을 하고 몇 주 뒤, 택배가 도착하면 내가 이걸 언제 샀냐며 한참을 생각했다. 잊을 만할 때쯤 도착하는 물건 택배를 뜯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루는 *** 드라이빙 슈즈를 보았다. 비싼 TOD'S는 못 사도 편한 로퍼 정도는 있어야지. 모델의 착화 사진도 그럴싸해 보인다.



이 인플루언서의 물건을 사는 건 처음이다. 계속 지켜보던 물건들을 고민하다 주문을 매번 놓쳤다. 좋은 후기들이 올라올 때마다 사지 못한 후회가 올라왔다. 저 드라이빙 슈즈만은 꼭 주문하리라 다짐했다. 손가락이 미끄러졌는지 깔별로 회색, 하늘, 주황, 보라 네 켤레나 주문했다. 이만큼 사도 TOD'S 한 짝 값도 안된다며 자기 합리화 중이었다.


이번에도 주문을 하고 잊을만할 때쯤 택배가 도착했다. 택배에 붙은 테이프를 신나게 뜯었다.

신발 박스를 여는 순간, 차오르던 택배 언박싱의 기대감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곤두박질쳤다.

신발 모양이 찌그러져 있었다. 이 정도는 박스에 눌렸겠거니 했다.

삐져나온 가죽은 가위질의 흔적들이 삐뚤빼뚤 남아있었다. 여기저기 마감이 덜 된 실들이 삐죽삐죽 투덜대고 있었다. 이상하게 신발 한 짝 바닥에만 도장 하나가 희미하게 찍혀있다.

실망감으로 가득 채워진 프리오더 신발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불량 같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프리오더는 교환, 반품 불가. 

제품에 이상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다.

암만 봐도 SNS 속 그분의 신발과 이 신발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데 내 눈에만 이 신발이 불량인가 보다. 올이 풀려 삐죽 나온 실은 라이터로 처리하면 되고, 삐뚤빼뚤한 자국은 원래 그런 거니 뭐 그냥 그렇게 신는 걸로.

그래 그렇다 치자.


"이거 우리나라에서 만든 건가요?"
"네. 국내 생산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신발 한 짝에는 도장이 찍혀있다.  

made in china


왜 거짓말을 했을까. 애매한 불량 기준보다 이해할 수 없는 거짓말에 화가 났다.

바로 SNS에 사진을 올려 따져볼까 생각했지만, 저런 이상한 회사는 알아서 망하겠거니 했다.







프리오더를 하더라도 불량을 교환해 주고 여차하면 환불을 해주는 괜찮은 회사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쇼핑몰에서는 당연히 신뢰가 없어 더 이상 물건을 구입하지 않았다. 이날 이후 굳이 광클릭까지 해가며 교환, 반품도 힘든 프리오더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SNS 쇼핑을 끊었다.


글을 쓰면서 문제의 SNS를 몇 년 만에 찾아봤다.

ㄹ***은 팔로워가 엄청나게 더 늘었다.

아직도 망하지 않았더라.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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