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는 대학원 동기다.
다른 대학교를 다녔지만 레슨 선생님이 같아 가끔 만났고 집도 가까웠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부쩍 친해졌다. 무뚝뚝한 나를 챙겨주는 센스 있는 친구였다. 타 대학에서 왔지만 금방 스며들어 자리 잡았다.
어느 날, E는 대학 동기를 만나러 가는 자리에 같이 가자했다. 셋은 간단히 맥주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 나를 대하던 모습과 영 딴판이다.
처음 보는 H는 공부는 잘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자금 대출 갚기도 벅차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공부 대신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료 준비를 부탁하는 듯했다. 그럴 수 있지. 부탁할 수도 있겠지. 자료 조사는 아르바이트로 할 수도 있지.
왠지 불편했다. 친구에게 부탁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네가 일을 해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약간의 무시가 보인다. 길들이는 걸까.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기술이 남다르다고 해야 하나. 평소와 다른 E의 모습이 낯설다. 흠칫 놀란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게 안주만 집어먹었다.
학자금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내 모습이 겹친다. E가 H에게 나무랄 때마다 괜히 내가 주늑든다.
우리가 무엇을 잘 못 했을까. 돈이 없으면 공부할 자격이 없는 건가.
이 사실을 알면 나한테 뭐라고 할까. 자격지심인가.
그때부터였다.
E는 왜 나와 어울리는 걸까. 왜 나에게 친절한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E의 인사에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더 이상 마음 편히 만나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한겨울 따뜻한 방구석에서 살아보려 아등바등하다 죽은 모기 시체를 치웠다.
모기의 마지막 날갯짓이 구슬프다.
생뚱맞은 계절의 모기처럼 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만 치다 끝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