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삼계탕과 헤어질 결심

by Hee언니


38.7도 체온과 바깥공기의 온도가 같아지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느꼈다.

7월의 장맛비가 내리는 날, 초복이 돌아왔다. 삼계탕 값이 올랐다고 며칠 전부터 신문에서는 난리가 났다. 쿠*은 물가가 올라 국민들이 삼계탕을 못 먹을까 봐 300원 삼계탕 이벤트를 열였다. 유명한 삼계탕 집에는 오늘도 줄이 늘어졌을까. 왜 복날엔 꼭 삼계탕일까.

복날
: 하지 다음 제3 경일인 초복, 제4 경일인 중복, 입추 후 제1경일인 말복이 되는 날을 말한다. 이 기간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이라 하여 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마련해 계곡이나 산에 놀러 가는 풍습이 있다.
하지 다음 제3경일(庚日:양력 7월 12일경~7월 22일경)을 초복, 제4경일을 중복, 입추(立秋) 후 제1경일을 말복이라고 한다. 중복과 말복 사이에 때때로 20일 간격이 생기는데, 이 경우를 월복(越伏)이라 한다. 초복에서 말복까지의 기간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로 이 시기를 삼복(三伏)이라 하며, 이때의 더위를 삼복더위라 부른다.
복날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계곡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다. 옛날 궁중에서는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과(氷菓)를 주고, 궁 안에 있는 장빙고에서 얼음을 나눠주었다 한다. 민간에서는 복날 더위를 막고 보신을 하기 위해 계삼탕(鷄蔘湯)과 구탕(狗湯:보신탕)을 먹는다. 또한 금이 화에 굴하는 것을 흉하다 하여 복날을 흉일이라고 믿고, 씨앗 뿌리기, 여행, 혼인, 병의 치료 등을 삼갔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복날은 절기도 명절도 아닌, 보양식을 먹고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풍습의 일종이다. 아니, 나라에서 꼭 삼계탕을 먹으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복날의 삼계탕에 열광하는가. 종로구 유명 삼계탕집에는 복날 줄이 어마어마하다. 복날의 신문기사 1면을 장식할 정도로 대단한 장경을 연출한다. 복날엔 삼계탕을 먹고 더위와의 전쟁에서 이겨내자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


가봤다. 그 유명한 삼계탕집. 어느 날, 친구가 자기네 동네로 오라며 맛있는 삼계탕을 사주겠다 했다. 복날이 아닌 그곳은 한산했고, 식전 나오는 인삼주는 썼고, 삼계탕은 걸쭉한 국물이 진하고 구수했고, 맛있었다. 평소 먹던 영계보다는 닭이 컸고, 실했다. 훗날 알았다. 거기가 거긴 줄도 몰랐던 그곳이 신문에 나오는 종로구 OOO이었다.


맛있고, 건강한 한 끼를 위해 줄 서서 먹을 결심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나, 이젠 삼계탕은 줄 서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다른 날 먹기로 해본다. 요즘엔 삼계탕 말고도 복날을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니깐. 삼겹살을 먹어도, 추어탕을 먹어도, 수박을 먹어도 복날의 더위를 이길 수 있다. 좋은 음식을 먹고 더위를 이긴다는 의지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복날은 의미 있을 테니깐.


그래서 준비했다. 돼지고기 듬뿍 넣은 고추장찌개.

사실, 더운 여름날에는 부엌 근처에도 가기 싫다. 그래도 오늘은 복날이니 이열치열의 느낌으로 찌개를 끓여본다. 왜 하필 고추장찌개냐 굳이 물어보면 냉장고에는 돼지고기 앞다리살 찌개거리가 있었을 뿐이고. 엊그제 시고모님이 가져다 주신 야채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올해도 고모님들은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을 보내주셨다. 감자, 상추, 가지, 오이, 고추, 완두통, 강낭콩 등등. 신혼 때는 농작물의 양에 깜짝 놀랐다. 파는 한 자루, 감자는 기본 1박스, 고구마는 기본 2박스. 한분만 주시면 다행이다. 고모님들이 서로 앞다투어 가져다주신다. 친정 엄마가 보낸 다는 반찬은 냉장고에 들어갈 자리도 없다며 말리고 말리느라 애를 썼다. 결혼한 지 한 해 두 해 지나니 농작물의 양도 그새 많이 줄어들었다. 고모님들 연세가 이젠 농사짓기 힘들 연세지만, 여전히 오며 가며 조금이라도 나눠주시는 정성을 요리로 보답해 보고자 맘먹어본다. 철이 든 건가.


막내 고모님 표 둥근 호박을 큼지막하게 썰었다. 여덟째 고모님이 농사지은 감자 한 박스에서 감자 3알도 썰었다. 기름에 고기를 볶고 육수를 부어 고추장 휘휘 넣고 저었다. 아. 이 고추장도 고모님이 주신 것이다. 참 복도 많지.


찌개 하나를 끓이는데 몇 명의 정성이 들어간 걸까. 한 가지 음식을 위해 애써준 모든 이들, 모든 재료들에게 감사하며 찌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맛있는 복날 음식을 먹었으니, 올여름 더위를 물리칠 비장함을 가져본다.

아. 참고로 삼계탕을 먹긴 먹었다. 시어머님이 비가 와서 경로당에 못 가셨는데, 경로당 총무님이 어머님 몫의 삼계탕을 꼭 드시라며 신랑 가게에 맡겨놓으셨다. 어머님은 그냥 우리 보고 먹으라고 하신다. 그렇게 갑자기 복날의 삼계탕이 생겼다. 올해도 복날엔 삼계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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