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대로 하기로 해.

by Hee언니

며칠 아프던 막내가 펄펄 날아다닌다. 자기가 먼저 어린이집을 가겠다며 준비를 외친다. 신발을 신고 가방까지 야무지게 매고 나선다. 이게 얼마만인가. 자유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이를 보내놓고 빈 밥솥을 보며 고민했다.

해. 말아. 해. 말아. 해. 말아. 하기 싫다. 밥.

나만 안 먹으면 괜찮은데, 신랑이 있다. 조심스럽게 얘기해 볼래요를 시전 한다.


"나는 김밥, 떡볶이 이런 게(집에서 당장 할 수 없는 김밥) 먹고 싶네. 어떡할까?"


눈치가 있는 그는 잠깐 나가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 밥 한번 안 할 뿐인데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껏 여유를 즐겼다. 신랑이 카톡을 보냈다. OOO 혜화점. 고기다. 나의 사랑 고기. 어라. 근데 혜화동이잖아. 집 앞이 아니잖아. 당장 먹지도 못할 곳을 왜 보낸 건가. 허허이.


이 남자, 갑자기 혜화동으로 가자고 한다. 잠시 고민했다. 애들 하원 시간까지 맞춰서 고기를 먹는 미션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딱 1초 고민을 했다. 그래. 오빠가 고기를 사준다는데 마다하면 그건 예의가 아니지. 빨리 먹는 건 자신 있다. 게 눈 감추듯 먹을 수 있는 게 고기 아닌가. 내가 그 데이트 신청 기꺼이 받아들이겠소.


그렇게 급 번개가 성사됐다.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화가 많은 기사님을 만나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마냥 스릴 있는 레이싱을 즐겼다. 단숨에 도착한 혜화역. 이게 얼마만인지. 언제 온 건지 기억도 안나는 이 거리가 마냥 반갑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식당. 옆 테이블에는 두 명의 외국인이 앉아있었다. 방금 나온 식사가 한상 가득 차려져 있다. 알 수 없는 말로 하하 호호 이야기하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오랜만에 젊음의 거리 대학로에 왔으니 나도 저들의 행동에 동참해야겠다 다짐해 본다. 어라. 배터리가 없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나오느라 얼굴도 지켜내지 못하고 로션만 바르고 나왔는데, 핸드폰 배터리는 당연히 챙길 새가 없지. 또 한 번 조심스럽게 얘기해 볼래요를 시전 한다.


"이따 음식 나오면 음식 사진 좀 찍어줘. 이건 찍어야 할 비주얼이야!"


흔쾌히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는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랜만의 데이트라서 그럴까. 애들이 없어서 그런 걸까. 고기를 먹어서 그런 거겠지. 신나는 마음만 생각하던 그때,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소스가 올려져 있는 앞접시부터가 마음에 든다. 샐러드는 야채를 좋아하는 나에게 신랑이 양보했다. 고기 냄새 맡은 허기진 배를 샐러드로 열심히 채워본다. 드디어 지글지글 고기가 나온다. 양념 갈비를 구워 적당한 크기로 잘라 접시에 예쁘게 담겨 있는 자태가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흘렀다. 종업원은 토치로 불쇼를 한번 보여준 다음 이제 드셔도 된다는 허락과 함께 사라졌다.


바로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아까 사진 찍어 달라며."


아뿔싸. 먹을 거 앞에서 이성을 잃었다. 내가 한 말도 기억을 못 하고, 본능이 앞섰다. 이래서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되는 건데. 어이없어하는 신랑에게 무안해 젓가락을 허공에 휘저으며 한참을 웃었다. 내가 왜 그랬지.


의외로 신랑은 부탁을 해서 그런지 접시를 요리조리 옮겨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줬다. 그래. 사진 똥손인 나보다는 훨씬 잘 찍을 거니깐 믿고 맡긴다. 사진을 찍는 그 잠깐의 사이에도 군침을 삼켜가며 윤기 촤르르르 흐르는 고기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먹을 차례인 건가. 애들 없이 먹는 고기는 행복 그 자체. 사랑한다.


커플 세트를 야무지게 싹싹 먹고 뜨거운 태양 아래 젊음의 거리 혜화동을 거닐었다. 고기도 좋고 날도 좋고 옆에 있는 이 사람도 좋고, 다 좋은 날이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반짝 데이트를 종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랑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면서 하는 말.


"자기야. 생각보다 사진이 별로다."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을 했다. 못 찍어도 나만할까. 사진 이야기에 아까 먹은 고기가 또 먹고 싶네.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달래야지.





흠...고기를 제대로 찍어놨네.





어라. 이 사진은 뭘까.

갈비대가 사진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지극히 고기에만 집중된 이 진심 어린 사진 포커스를 보라.


어이가 없다. 음식에 돌진하던 내 젓가락이나 접시를 요리조리 옮겨가며 찍던 사진의 결과나, 어찌 이리 쿵짝이 잘 맞는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이래서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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