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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다시 만나다.

by Hee언니


재능은 없고 하려고 하는 열정만 가득한 사람들 있잖아.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나 봐.
영화 <라라랜드>





라라랜드의 미아의 대사가 잊고 있던 춤으로 이끌었다. 잠겨있던 수도꼭지가 느슨해졌고, 셀 수도 없는 감정들이 물줄기를 타고 쏟아져내렸다.


천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몸짓은 얼어붙었다. 발을 뗄 수 조차 없었다.

손 끝 하나를 들어도 느낌 있는 선천적으로 가진 운명 같은 춤꾼들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운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춤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연습을 수만 번 해봐도 안 되는 것들도 있었다. 흉내 낼 수 없는 느낌, 온전한 몸의 느낌을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풍겨져 나오는 선천적인 천재들이 있었다.

춤이 좋아서,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꿈의 한계는 벽에 부딪혀 뒤를 돌아보게 했다. 이제껏 보이지 않던 춤의 이면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인정하기 시작하니 그렇게 좋아하던 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더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채찍질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무대공포증은 시작됐다. 입꼬리를 눈꼬리까지 최대한 끌어올려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꿈쩍도 않는다. 입이 찢어져라 웃어야 보일 듯 말 듯인데 두 입은 붙어 다니며 서로 헤어질 마음이 없어 보였다. 어색한 웃음에 신경이 쓰이자 발이 신경 쓰인다. 한발 한발 꾹꾹 누르던 몸의 무게는 어디로 갔는지 허공으로 돌아다닌다. 손끝으로 뻗어내던 감정은 옷소매 끝에서 댕강 잘려 의미 없는 손짓으로 변해있었다.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고, 듣보잡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미동도 없을 예술세계에서 말없이 조용히 사라지기로 마음을 굳혔다. 마음 없는 춤이 고되었고, 언제부터인가 머리로 익힌 순서를 영혼 없이 팔다리를 휘젓고 있었다. 소울 리스좌, 입력된 순서들만 몸으로 출력하고 있었을 뿐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몸이 아니었다. 그저 춤추고 싶은 마음이 이끄는 몸이 아니었다.

춤추는 게 좋았는데, 항상 좋았었는데 그 좋아하는 걸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마음은 방황하며 멀어져 갔다.

결국, 춤으로부터 도망쳤다.








지난여름 어느 날, 평생교육원 수업을 처음으로 개설하는 선배가 등록을 부탁했다. 처음 맡는 수업에 일종의 머릿수 채우기 품앗이. 아줌마들의 취미 수업에 별생각 없이 어슬렁어슬렁 마실 삼아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수다나 떨다가 와야지 했던 생각은 안일했다. 열정적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어머님들 덕분에 오랜만에 내 다리 근육들만 덜덜 털렸다. 이제껏 춤춘다고 잘난 척하던 허영의 벽에 부딪혔다. 인천, 상주, 부산 등 춤 하나를 위해 하루를 쏟아내는 분들이었다. 춤출 때 제일 행복하다는 할머니 강습생 한 분의 웃음에서 이제껏 잊고 있었던 내 입꼬리가 같이 올라갔다. 다시는 올라가지 못할 것 같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방황하던 춤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춤을 만났다.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교가 아니다.

<이사도라 덩컨>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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